하루가 더 이상 복구되지 않을 때, 사람은 무엇을 포기하는가
[강의 안내]
엄마가 되는 법을 가르쳐주는 학교는 없었습니다.
오늘은 ‘엄마 학교’의 세 번째 시간으로, 아프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임신 초기 임신부의 일상 붕괴를 살펴봅니다.
출근도, 약속도, 계획도 모두 무너진 자리에서 하루를 겨우
유지해 내는 사람의 몸과 마음은 어떤 선택지 앞에
서게 되는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임신을 확인한 뒤 약 두 달 반을 지독하게 버텼다.
그때는 이런 게 임신이라면 솔직하게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입덧이 있는 사람들은 이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출산까지 가는 걸까.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갑자기 위대해 보였다.
임신 테스트기로 확인한 뒤 처음 2~3주는 내 몸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느낌이었다.
뱃멀미와 비슷했는데, 술을 마시지 않는 나는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술이 덜 깬 속을 계속 달고 사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 시기에도 아침에 일어나거나
저녁을 먹고 나면 자연스럽게 화장실로 향했다.
그 무렵 나의 하루는 회사 일보다 화장실을 기준으로 흘러갔다.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입덧으로 시간을 끄는 것이 마음에 걸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
씻다가 토하고,
토하다가 다시 씻었다.
그렇게 겨우 집을 나섰다.
회사에 도착하면
아침마다 차가운 매실을 먹으며 속을 달랬다.
원래는 차가운 것도, 신 것도 잘 먹지 않았지만
그때 내 몸이 허락한 건 그것뿐이었다.
회의를 마치고 나면 안심이 됐다.
그때부터는 화장실을 비교적 자유롭게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업무 자체보다
‘언제 화장실에 갈 수 있느냐’가
하루의 안정감을 좌우했다.
점심시간은 늘 곤욕이었다.
배는 고픈데 입맛은 없었다.
여러 반찬 중 그나마 입에 맞는 건
신맛이 나는 백김치였다.
원래도 소식하는 편이라
음식을 남겨도 눈에 띄지 않았다
.
다들 몰랐지만,
나는 혼자서 입덧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있었다.
임신 초기에는
엽산을 꼭 먹어야 한다고 했다
태아 발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몸은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보건소에서 받은 엽산도 토했고,
집에 있던 건 냄새가 너무 심해 삼키지 못했다.
약국에서 새로 산 것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젤리 형태의 엽산을
억지로 씹어 삼켜야 했다.
점심을 먹고 엽산을 먹어야 해서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며 억지로 삼켰다.
냄새를 참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먹어야 하는
하루의 과제가 생겨버렸다.
테스트기 확인 후 2~3주 지나서
병원에 가야 했다.
직장은 사유를 말해야 시간을 내주는 구조였다.
혹시 모를 상황이 두려워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다른 이유를 둘러댄 채 병원을 다녀왔다.
진료실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마주쳤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던 날이었다.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이 임신 사실을 말했고,
그분은 뜻밖에도 따뜻한 말을 건네며
밥을 사주고 직장까지 태워주었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귀인이었다.
초음파로 난황과
아주 작은 태아를 확인했다.
사진도 받았다.
직장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가방 속에 꽁꽁 숨겨두었다.
임신이 죄는 아니었지만,
이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지금의 일상은 바로 끝날 것 같았다.
입덧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고,
말하는 순간 퇴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처음엔 하루 두 번 정도였던
화장실 행선지는
어느새 다섯 번, 여섯 번으로 늘었다.
순간순간을 화장실 기준으로 계산하게 되자
나는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심한 사람들은 봉지를 들고 다닌다고 했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회사에서 얻어먹은 간식들은
거의 예외 없이 다시 화장실로 향했다.
먹고 치우다 말고
뛰쳐나가는 날도 있었다.
직장에서 근처 다른 사무실로
이동해야 할 때가 많았다.
걸어서 7분 남짓한 거리였다.
일을 마친 뒤
혼자 정리하겠다며 사람들을 먼저 보냈다.
그제야 마음 놓고 화장실을 쓸 수 있었다.
나왔는데 다시 속이 올라왔다.
돌아오는 길 내내
참고 또 참았지만,
결국 원래 사무실로 가는 길
어딘가에서 멈춰 서야 했다.
참는다고 참아지는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살은 오히려 빠졌다.
1~2kg만 더 빠지면
입원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집에 돌아오면
병든 닭처럼 축 늘어진 채 누워 있었다.
눈을 감으니
배를 타고 있는 것 마냥 속은 계속 울렁거렸고,
잠조차 오지 않았다.
그저 눈만 감고
시간을 보내는 밤이 이어졌다.
입덧은 단순히 속이 불편한 증상이 아니었다.
하루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게 만들었고,
회복이라는 선택지가 삭제된 채 버텨야 하는 시간이었으며,
어제도 오늘도 끝없는 터널을 걷는 것처럼
끝도 실체도 보이지 않는 싸움이었다.
그 시기 나는 무언가를 ‘선택’하고 있지 않았지만,
분명히 무언가를 조금씩 내려놓고 있었다.
계획, 체력, 여유, 그리고 이전과 같은 나 자신.
이 수업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고통의 정도가 아니라 구조다.
하루가 더 이상 복구되지 않는 상태에서 사람은 결국 무엇을 포기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질문이 어떤 선택을 가져오고 어떤 삶을 만드는지.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만 그때부터,
나는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엄마 학교 수업 일지]
●이번 시간에 알게 된 것:
하루가 무너진다는 감각은
체력이 아니라 결국, 선택의 문제를 남긴다.
●다음 수업 예고:
이 질문들이 어떻게 ‘결정’으로 이어졌는지
매주 화,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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