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탄 기차는 대낮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잠깐씩 보이는 바다와 바다에 내리쬐여 부서지는 햇살은 아름다웠다. 파도에 부서지는 햇빛처럼 나도 부서짐으로 빛을 내고 싶었다, 그 순간만큼은.
부산에 도착하니, 저녁때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의 점심식사는 사라지긴 했지만, 점심의 감성은 남아있는 상태였다.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해보았다. 아직 해가 질라면 몇 시간이고 남았는데, 바다에 가야 할지 다른 데 라도 보고 있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일단 광안리로 가기로 했다. 어차피 보려고 한 거, 조금 더 일찍 가서 보고 있어 보기로 했다. 사람구경도 은근히 재미있었다.
광안리의 풍경은 포항과는 조금 달랐다. 유명한 관광지라서 그런지 아까의 바다와는 달리 보였다. 복작복작하고, 여러 사람들이 바닷가에서 물장구치고 있었다. 아까의 바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있고, 눈으로 보기에도 고요하지 않았다.
바닷가는 사람 소리와 바다의 향기로 가득했다. 사람 느낌이 나고 조금 시끄러운 곳에 오니, 나도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작가도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사람은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한다는 것도.
바닷가에 앉아있다가 보니, 바다의 열기와 땅의 열기가 동시에 느껴졌다. 바람도 열풍이 불어왔다. 7월의 부산은 북쪽보다 훨씬 더 덥고 습했다. 바닷가인 탓도 있을 터이고, 남쪽인 탓도 있을 터였다.
하늘이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그 자리를 메워가고 있었다. 나와 같은 사람일까, 나와 다른 사람일까 궁금했다. 어쩌면 동화되고 싶어 하지만, 동화될 수 없는 게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다들 같이 온 연인, 가족, 친구가 있어 보였으나, 나처럼 이 여름에 씻지도 못하고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은 더 없어 보였다. 아마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냄새나고 머리 떡 진 한 사람으로 보이겠거니 했다.
다들 이쁘게 멋있게 입고 와서 서서히 밝아오는 광안리의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누구는 불꽃놀이를 하기도 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같이 할 사람이 없다는 게 아쉬움을 넘어 서글퍼지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느껴졌다. 누구라도 데리고 올걸.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아니, 어쩌면 그 누구도 같이 오지 않은 게 다행일 수도 있다고 느껴졌다. 그래야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모든 것들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느껴졌다.
밤하늘은 드리웠고, 하나둘씩 켜지는 조명에, 그들이 만들어내는 야경에 잠시 정신을 빼앗겼던 모양이다. 광안대교를 건너는 차들과 다리에 있는 등이 모여 만들어낸 풍경은 스크래치로 만든 그림과도 같았다.
밤하늘의 어두움은 정점을 향해 가고 있었고, 아얘 검은빛을 내보이고 있는 바다와 어두운 밤하늘이 만들어낸 배경은 야경을 돋보이게 하기 충분했다.
멍하니 광안대교를 보았다. 어둑어둑해지는 이 바다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앉아있은 지 얼마나 되어가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거지꼴을 하고 다니고 있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것 또한 중요하지 않았다.
나도 야경이 되고 싶었다. 다리 위를 건너는 차들의 붉은 후미등과 밝은 전조등은 웅장한 광안대교의 야경에 일조하고 있었다.
나도 야경이 되고 싶었다. 저렇게 밝은 불빛으로 어두워진 하늘과 바다를 비추는 야경이. 물아래로 흩뿌려지는 조명의 잔재들마저 아름다웠기에, 나는 꼭 야경이 되고 싶었다.
그 순간, 당장 뒤를 돌아 택시를 잡아탔다.
"광안대교 한 번만 넘어주세요. 다시 여기로 돌아와 주시면 돼요."
택시 기사님은 의아해하는 표정이셨지만, 내가 말씀드린 대로 움직이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몇 분을 가더니 광안대교 입구가 보여오기 시작했다.
차들은 많았고, 나도 그 차 중에 하나였다. 택시는 조금 차분한 속도로 다리를 넘기 시작했고, 나의 눈에는 아까 내가 있었던 해수욕장이 아주 작게, 정말 작게 보였다.
나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세상의 일부를 전부처럼 보고, 세상의 전부를 일부처럼 보고. 어쩌면, 나는 기만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야경이 되었다. 이 다리를 넘어가는 이 순간에는 나도 야경이 되었다. 그렇다면, 나도 이 문학계에, 예술에 있어서 일부가 된 게 아니었을까.
이제 나는 나의 모든 존재 이유를 깨닫지는 못해도, 나의 존재 이유의 일부는 찾아낸 것 같았다. 행복했다. 정말 오랜만에 행복하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다시 서울로 향하기로 마음먹었다. 원래 내가 있던 아주 지저분한 작업실로. 근데 이제 예전에 복잡했던 내 머릿속은 차분히 정돈되었다. 이제 작업실도 차분해질 것이다.
나는 택시기사님께 죄송하지만, 부산역으로 가줄 수 있냐고 물었다. 기사님은 나를 아주 빠르게 부산역으로 데려다주셨고, 나는 가장 빨리 올라오는 고속열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가스덩어리가 아니라, 이미 하늘에서 빛을 내고 있는 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각자만의 온도와 크기를 가지고 빛을 내는 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