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인의 '꿈꾼 그 옛날'을 읽고서...
오늘 소개할 시는 김소월 시인의 ‘꿈꾼 그 옛날’이라는 시이다. 이 시에 대한 인포를 조금 설명하고 넘어가자면, 우리가 국어 시간에 한 번쯤은 만나보았을 김소월 시인의 시이다. 작가의 특징으로는, 한의 정서, 3 음보라는 작품의 특징이 있겠다. 시대적으로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작가이고, 음독자살로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는 특징이 있다. 이 시의 발표 시기는 1920년대이다. 시적 상황은 밤에서 새벽, 어떤 여자를 그리워하는 상황에 화자가 놓여있다.
내가 이 시를 읽으면서 주목한 부분은 크게 두 가지이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그녀도 아니고 ‘여자’라고 표현한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여기서 내재적으로는 사랑하는 사람 혹은 그리워하는 사람이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그 준거는 ‘내 꿈의 품속으로 들어와 안겨라’라는 시구이다. 근데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내 꿈의’ 품속이라고 이야기했는지 물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시대가 일제강점기였다는 점을 통해 이 여자가 우리 민족의 염원인 자유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여자가 우리 민족의 자유를 뜻하는 것이라면, 여자가 으스름을 타고 온다는 것이 자연스러워진다. 으스름을 타고 ‘꿈의 품속으로’ 들어와 안기는 것은, 우리 민족의 자유가 아직 물밑에 있고, 꿈으로만 볼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도 있겠다.
외재적 해석을 해보자면 이렇다.
달빛은 친일파를 의미한다. ‘눈이 와라’란 상황은 앞길을 분간하기 힘든 상황이 된다. 그 상황에서 ‘고요히~달빛이 들어라’라는 이 문구는 모르는 새 침입하는 친일파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렇다면, 앞에서 한 설명인, 여자가 우리의 자유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아무도 모르게 힘겹게 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별빛의 의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별빛이 만든 그림자 하나가 창틈을 엿본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그 존재는 아주 몰래 화자를 지켜보고 있는 존재일 것이고, 그렇다면 여자와는 상반되는 존재이니, 이 또한 달빛의 의미와 유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꿈꾸던 그 옛날’은 우리의 자유로운 날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눈앞이 보이지 않고,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탐하더라도, 우리는 이 지금이 쉬이 만들어진 결과가 아님을 인지하고, 앞날을 살아가야겠다.
얼마나 여자가 보고 싶었으면, 꿈의 품 속으로 들어와 안기라고 했을까요? 여자를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 여자가 보고 싶었나 봅니다. 여러분들에게 ‘여자’와 같은 존재는 누구인가요? 이 시에서의 ‘여자’를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댓글로 의견을 들려주세요. 후원은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