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쓴다는 건 무슨 일일까.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만나는 것? 아니면 나의 목소리를, 우리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세상에 퍼트려보기 위에 발악하는 첫걸음일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이미 나는 공산품을 찍어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겨울날이다. 뼈가 깨어질 것 같이 차가운 겨울날이다. 나는 겨울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이 기나긴 방황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밤이 깊어지면 나의 생각은 저기 심연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수압에 의해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수연, 너는 대체 무슨 일을 겪어왔길래 나와 같이 작가라는 일에 회의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내가 만약에 지금 이 시간에 태어났으면 너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까. 네가 어느 일을 겪었든 간에 나는 그 시간에서 그 무엇도 가져올 수 없었고, 너 또한 내가 살던 시간에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다.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단 한 가지였다. 최선을 다해서 너를 도와, 미래를 위한 편지를 완료하는 것.
이미 과거에 남기는 회고록을 쓰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듯하고, 현재의 나는 사람들이 오며 가며 보게 될, 아무도 관심 없는 묘비가 되고 싶지도 않다. 나는 미래를 향한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고, 이제 이쯤에서 나와야 하는 장면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 대한 설렘, 혹은 절망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뻔한 장면을 내 인생에 만들고 싶지 않았다.
“수연 씨. 수연 씨는 과거로부터 남아있는 기록 중에, 어떤 걸 보면 도움이 되실 것 같나요?”
수연은 나의 말에 잠시 고민했다. 단순히 내가 할 말만 쓰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물어본 질문이었다.
“음… 그러게요. 저 같으면 비트코인이나 알려줬으면 좋았겠는걸요. 그때는 상상도 못 할 것이겠지만, 뭐 그런 게 지금은 있어요.”
비트… 뭐?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 시대에는 정말 신기한 게 많아졌다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일단 수연의 책상 위에 있는 커다란 판자부터 난 신기했다. 수연은 그 앞에서 타자기와 비슷한 듯 다른 물건에 손을 얹고 있더니, 상자만 한 데에서 글씨가 적혀서 나왔다.
수연은 흰 종이 위 검은 글자들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형형색색의 필기구들이 종이 위에 스칠 때, 수연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퇴고라는 과정은 작가들이 겨우 만들어놓은 신생세계에 조금씩 균열을 주는 작업이다. 완벽하게만 보이는 세상에 숨어있는 흠을 찾아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을 마주하는 것 같다.
나도 글을 적기 시작했다. 수연의 책상에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수연이 굉장히 아끼는 물건 같아서 쉬이 빌려달라는 말을 하지는 못했다. 나의 눈에 비치는 백지는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전에 나는 백지를 보고 무엇을 떠올리고 있었을까. 하나 확실한 것은 나에게 주어진 이 백지는 나에게 어떠한 답변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바라 글을 적어왔는지, 지금 이 백지를 마주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하나 확실해진 것은, 우리는 잊히는 작가가 되더라도 언젠가 읽히게 될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아 안 써. 안 쓸 거야. 아니 그래도 쓰긴 해야지.”
원고를 작업하는 수연은 내가 관찰한 자아 이외의 자아가 있는 것 같이 보였다. 내가 내 시간에서 봐 온 작가들만 하더라도 원래의 그 평화로워 보이는 미소 뒤에 반자아적인 모습이 있었던 게 기억이 난다. 어쩌면 글을 써오면서 작가 자신의 영혼과 작품의 완성도를 맞바꿔왔는지도 모르겠다.
수연은 계속해서 타자기를 누르고 자신을 비난하고 다시 타자기를 누르기를 반복했다. 그러며 수연의 한 해가 끝나갈 때까지 수연은 계속해서 말을 잃어갔다.
시간은 길었고, 수연은 계속해서 그 긴 시간에 갇혀버렸고, 나는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망가져가는 걸 지켜보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곧 죽기 직전인 꽃을 살려야만 한다고 느꼈다.
“수연 씨.”
“네?’
“잠깐 밖에 나가볼래요?”
수연이 하루 온종일 쳐다보고 있던 판자 틈으로 내비친 얼굴에는 핏기가 돌지 않고 있었다. 대략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수연은 이 작은 단칸방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나는 사람이 산 채로 썩어가는 걸 목격하고 있었다. 살려야 한다 살려야만 했다. 나는 이 아름다운 꽃이 다시 피어나기를 간절히 원했다.
“굳이… 나가고 싶지 않아요.”
수연의 목소리에는 마지막 남은 힘조차도 없다는 말이 섞여있었다. 나는 살리고 싶다. 살려야만 한다. 이 아이가 나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차갑지만 따스한 모습을 보고 싶었고, 다시 이 사람이, 작가가 아름다운 글을 쓰는 걸 보고 싶었다.
“딱 한 발자국만 나가서, 바람 쐬는 거 어때요? 그러면 글이 더 잘 나오지 않을까요?”
수연은 나의 눈을 멍한 눈으로 보더니 다시 판자 뒤로 숨어, 타자기에 손을 얹었다. 꽃은 점점 더 시들어가고 있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갑자기 크게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고, 수연은 책상에 머리를 박은 채 잠들어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수연에게 의자에 있는 담요를 덮어주고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부스스해진 머리를 정리하며 수연은 잠에서 깨어났다.
“아. 아아… 아아아악!”
수연은 갑자기 괴성을 지르더니 책상에 납작 엎드렸다. 너무나도 당황스럽지만, 너무나도 이해되는 행동이었다. 작가란 자신의 뼈를 깎아내는 고통을 버티고서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세상은 아름답지 않다. 아름답지 않지만, 작가는 그 안에 있는 한줄기의 빛을 찾아내는 일을 하는 것 같다. 사실 모든 예술가가 그러하다. 그러기 위해서 소모되는 건 작가 자기 자신의 영혼이다. 수연의 영혼은 얼마나 남아있는지 알 수 없었다.
수연은 점점 표정을 잃어갔고, 꽃은 회생 불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되도록 방치한 나는 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아니 사실 내 책임이 아닐 수도 있으나 곁에는 나 밖에 없었으니 이 꽃을 살려야 했다. 살려야만 한다.
차가운 겨울을 걷는 이 사람에게 나는 무슨 존재가 되어줄 수 있을까. 나는 여기든 저기든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겠지만, 나를 보듬어준 이 사람을 위해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