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위에 꽃을 피우는 일을 아시오?-5화(완결)

by 별님

너의 고통마저도 사랑했던 것 같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너는 나의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는 것이다. 너를 사랑한다.


네가 글을 다시 썼으면 좋겠다. 나에게 비춰주었던 약간 차가운 따스한 미소를 다시 보고 싶다.


너는 아름답다. 네가 쓴 원고를 버렸을 때, 휴지통에서 살짝 꺼내서 본 너의 원고는 진심으로 아름다웠다. 너라는 꽃이 그 끝내 열매를 맺기를 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너를 어떻게든 이 방 밖으로 끄집어냈다. 핏기가 사라진 너의 얼굴은 다시 파릇파릇한 잎사귀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다시 나를 처음 보았을 때, 그때 그 모습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너를 데리고 동네 슈퍼부터 시작해서 골목길 여기저기를 함께 거닐었고, 그 끝내 너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작은 노트에 메모를 하는 너의 옆모습이 아름다웠다. 머리칼이 네 얼굴을 스치는 것 마저도 아름다웠다. 나는 너를 지키고 싶지만, 나는 이 시간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너를 지켜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이것은 내 욕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너는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표정은 멍하니 정신이 나간 표정이었지만, 조금씩 얼굴에 혈기가 돌기 시작했다. 나의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수 없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이제야 탈고한 너일 텐데 너의 작품이 서점에 진열되는 걸 같이 지켜봐 주지 못한 나의 슬픔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너도 지금 이 글을 읽는 시간에 눈물을 훔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네가 우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네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로 인해서까지는 무리여도, 네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이 편지를 보는 너는, 이제 더 성숙한 작가가 되어 세상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사연을 만나가 기를 바란다. 이 또한 나의 욕심일지도 모르겠으나, 어찌 보면 너의 욕심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고마웠고,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해 나 스스로가 한스럽고, 답답하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돌아가야 할 운명일지어니, 너는 이곳에서 너의 운명대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시간이 없다. 이만 줄인다.


너는 나를 떠났고, 나는 너 덕에 글을 썼고, 작품을 냈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사연을 접하고, 그 끝내 내가 하려던 목표를 이뤄냈다. 원고를 다시 완성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너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근데, 편지지가 하나 더 있었다.

혹여나 네가 이 편지를 보게 된다면, 노란 지붕 서점에 가길 바란다. 내가 지금에서 할 수 있는 기약이 이것뿐이로구나. 내가 나의 시간에 돌아가게 된다면, 나는 너를 위해 노란 지붕이라는 이름의 서점을 만들어 책을 팔고 있을 터이니, 나는 네가 그저, 나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꼭 이곳으로 와 늙어간 나를 만나주면 좋겠구나. 네가 어떻게 살았는지, 살고 있는지가 나는 너무 궁금하니, 무리한 부탁일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네가 꼭. 와주었으면 한다.


노란 지붕, 서점? 나는 당장 검색을 시작했다. 그러자 나타난 한 서점. 나는 그곳으로 당장 향했다. 외진 골목길에 있어 누군가 의도적으로 찾지 않으면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는 이곳에 들어섰다. 그리고 나는 불렀다.


“진호 씨?”


그러자 책방 깊숙한 곳에서 얼굴에 돋보기안경을 걸치고 있는 한 사람이 나왔다. 머리는 이미 백발이었고, 움직임은 굉장히 둔해 보였다.


“오셨군요 수연 씨. 드디어.”


그의 목소리, 말투, 모든 게 다 시들어가고 있었지만, 내가 다시 꽃 피우게 해 준 감사한 사람이라는 것은 직감할 수 있었다. 그는 나에게 정말 오래된 책을 한 권 건넸다.


“헌책 같죠? 사실은 그 긴 시간 동안 당신께 드리려고 만들어 둔 책이에요.”


나에게 주려고 만들어 둔 책이라… 정말 감사하고, 감사했다.


“그리고, 정말 아름답게 잘 커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소이다. 당신은 아마 외조부를 본 적이 없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 외조부는… 당신의 앞에 당당할 수 없었거든요. 하지만,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저는 당신을 어렸을 때부터 봐왔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죠. 아 그때 그 아이였구나. 참 신기하지 않나요? 운명의 장난이라는 게.”


나의 외할아버지였다. 아. 그래서, 외할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셨던 거구나. 할머니를 버리고 떠났다는 이야기를.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시간이 엇갈려버린 덕분에, 이 사람 덕분에, 나를 어떻게든 밖으로 끌고 나가준 덕분에, 글을 완성할 수 있었고, 페름기 대멸종 수준의 슬럼프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이 글을 완성하기까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올린다. 그리고, 나도 도움이 되어야겠다.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에게 옅은 미소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수호천사가 있었으니까.

이전 05화백지위에 꽃을 피우는  일을 아시오?-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