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힘껏 잡기

발코니 텃밭기록 (4)

by 골방지기

요즘 날이 좀 더워졌더니 발코니 텃밭 식물들이 눈에 띄게 자라는 속도가 빨라졌다.

상추는 헐벗게 이파리들을 다 뜯어버려도 이틀이면 또 가득 잎이 차있고, 며칠사이 방울토마토는 한마디가 넘게 자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 자라나 싶던 오이가 난간에 처둔 넝쿨망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오이와 애플 수박은 넝쿨식물이다. 줄기가 자라면서 아주 가늘고 꼬불꼬불한 넝쿨손이 나온다. 요 며칠사이 넝쿨손이 많이도 생겼다. 난간 바로 옆에 있는 오이는 냉큼 난간에 걸친 넝쿨망을 잡았다.

그런데 이번에 알게된 사실인데, 이 가는 넝쿨손은 힘이 엄청 세다. 무거운 오이 열매를 지탱해야하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기댈 곳이 있으면 단단하게 감아서 잡고 올라간다. 감아버린 넝쿨은 풀 수 없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냐면 오이 넝쿨손 위치가 마음에 안들어서 다른 곳으로 옮기려다 실패했기 때문이다. 한 넝쿨손은 뜯어졌고, 다른 것은 전혀 풀리지도 않아서 포기하고 말았다. 그만큼 단단하게 감는다.


한 줄기에서 넝쿨손이 하나만 나오지는 않는다. 여러개가 나오고, 먼저 잡은 손이 무조건 선점해버린다. 그러니 키우는 입장에서 넝쿨손의 위치를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다. 보고 있자면 잘못 잡은 넝쿨손이 서로 엉켜서 열매가 맺힐 때 피해를 보면 어쩌나란 생각도 들면서 걱정이 많아진다. 그래서 넝쿨손이 나오면서 넝쿨망을 잡기전에 슬쩍 내가 원하는 위치에 손이 가도록 걸쳐둔다.

식물들은 마치 서로 먼저 기댈 곳을 잡으려고 경쟁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하고 함께 버텨주면서 열매를 지탱해주는 협력자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 무거운 열매를 버틸 수 있게 함께 힘을 모은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인간이나 결국 혼자서는 못살아가나보다. 슬쩍 누군가가 내가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먼저 도착하려고 경쟁도 하지만 같이 버텨야 이겨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오이는 언제 열릴려나...... 넝쿨 손만 나오지말고 이제 꽃도 좀 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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