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ce!

나는 peace! 너는 freedom!

by 골방지기

냥 그런 날이 있습니다. 아주 쉽게 분노 발작 스위치가 켜지는 날, 오늘이 그런 날입니다.

최고 제한속도 60km/h인 도로에서 50으로 달리는 차 뒤에서 마구 경적을 울리고 싶어졌습니다. 회전 교차로에서 전혀 다른 차들에게 끼어둘 틈을 안 주고 속도를 내는 차들 사이로 훅 끼어들고 싶어졌습니다. 길을 건너려고 서 있는데, 빨간 편에서 선거운동 하는 사람들이 웃으면서 다가올 때 한 마디만 걸면 "누구 때문에 다시 선거를 하는데!!", "내란당은 말 걸지 말아 주세요!"라고 성질내고 싶어졌습니다. 처음 간 도서관에서 정문을 찾지 못해서 한참을 헤매다가 바로 옆에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아아악!' 소리 한번 내지르고 싶었습니다.


런데 왜 분노 발작스위치가 켜졌냐고요? 이유는 언제나 그러하듯이 굳이 화를 낼 필요가 없는 경우였어요. 시작은 단순했습니다. 머리 깎으러 가는 중2 딸에게 어깨를 손가락으로 찍으며 물었습니다.


"어디까지 깎을 거야? 여기까지?"

"어깨 밑으로 8cm까지 오게."


은 내 얼굴도 안 보고 귀찮다는 듯이 대답합니다. 딸의 머리카락은 내가 보기에도 어깨 밑으로 10cm는 족히 되어 보였습니다.


"지금 봐도 밑으로 10cm 정도 같은데? 겨우 2cm 자른다고?"


말에 딸이 한숨을 쉬고 많이 자르는 거라면서 뾰족하게 말을 합니다. 겨우 2cm 자르려고 예약하고 운전해서 이렇게 가나 싶어서 저도 짜증이 났습니다. 딸은 계속 한숨을 쉬면서 똑같은 말을 반톤씩 올려가면서 반복합니다. 제 말을 못 알아들으니 저도 열불이 나는 게죠. 저는 그 한숨소리가 계속 짜증이 났습니다. 그렇게 몇 번 이야기가 오고 가다가 결국 '딱' 분노 발작 스위치가 켜졌습니다. 결론은 나는 어깨의 끝이 기준으로 말하고 있었고, 딸은 목과 만나는 어깨의 시작이 기준이었습니다. 기준부터 달랐지만 다 소용없습니다. 딸의 말투를 받아 줄 만큼 내 마음속에 여유는 없었습니다. 그냥 그런 날이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데 마음속에 여유도 없고 살짝 가시가 돋아 있는 날. 그런 날이 많아지는 게 갱년기라고도 하더라고요.

노 발작 스위치가 켜지고나서 내 앞에 끼어드는 차에, 천천히 달리는 차에, 입이 대자로 나와서 울면서 억울해하는 딸에게 다 화를 내다가 딸의 사과로 일단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스위치는 꺼졌지만 잔불은 그대로입니다. 서로 말을 안 합니다. 지금 잘못했다가는 다시 스위치가 켜질 수 있다는 것을 아이도 알고 나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계속 마음속으로 'Peace!'를 외쳤습니다. 나의 이성을 깨우는 일종의 마법주문입니다.


음속에 남아있던 분노의 불씨까지 꺼지고 나면 부끄러움이 밀려올 시간입니다. 반성의 시간이죠. 정말 별것 아닌 이유로 시작된 일이었으니까요. 이유를 알면 더 부끄럽습니다. 괜히 당위성을 찾으려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예민했고 지나쳤습니다. 지금부터 침묵은 쪽팔림의 침묵입니다. 아이에게, 나 자신에게 다 쪽팔려서 더 당당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습니다. 여전히 마음속으로 'Peace!'를 외쳤습니다. 어서 이성을 완전히 깨워야 하니까요.

말은 어느 가족이 그렇듯이 포옹으로 끝났습니다. 이런 일이 점점 더 잦아지고 있습니다. 중2병과 갱년기가 만나면 갱년기가 이긴다고 까불지 말라고 말하지만, 그 전쟁은 처참합니다. 사춘기 아이도 peace를 외쳐주면 좋겠지만 아이는 'freedom!'을 외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저라도 계속 외쳐야죠.


"Peace!!"


모녀.png



#writeone #하루한글



매거진의 이전글나의 개는 똥밭에서 뒹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