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채우는 기쁨들

라키비움 J 어 사전 (9월) - 2부 : 일상의 기쁨을 발견하는 순간들

by 골방지기


기쁨 [名]
가슴이 환히 밝아지며 웃음이 저절로 피어나는 마음의 상태.
다크초콜릿과 에스프레소, 눈을 감고도 보이는 붉은 세상, 계수나무 향, 사춘기 딸의 웃음, 뭉게구름처럼 나를 살아 있게 하는 것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동네 주민들과 첫 모임을 가졌다. 비록 얼굴을 마주한 건 처음이었지만, 사실 우리는 청약 당첨 이후 3년 넘게 단톡방에서 수다를 나누던 온라인 친구들이었다.

그날 내가 읽어준 그림책이 바로 소피 블랙올의 『내가 아는 기쁨의 이름들』이었다. 52가지 기쁨을 다 읽어줄 수는 없어서, 나를 소개하는 데 어울릴 만한 부분만 골라 읽었다. 커피, 차, 개를 쓰다듬는 일, 일출을 바라보는 순간들. 이건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책을 다 읽고나자 사람들도 자연스레 자기 일상의 기쁨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나는 내 일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순간들을 발견할 때마다 기록해왔다. 돌이켜보니, 그것들은 예전부터 슬플 때, 화날 때, 지칠 때 나를 위로해주던 것들이었다. 그중 남들이 잘 모를 만한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이렇다.


1. 다크초콜릿을 입에 물고 마시는 에스프레소

혹시 이것을 아시는 분이 있을까? 진할수록 그 맛이 더욱 예술인데, 내 머릿속이 검은 기운에 휩싸일 때 나를 순식간에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조합이다.


2. 눈을 감고 바라보는 태양

눈을 감고 태양을 바라봐도 눈이 부시다. 그러면서 어떨 때는 따뜻하고 어떨 때는 뜨거운 그 기운이 온전하게 얼굴 전체를 덮는데, 눈을 감고도 보이는 붉은 세상과 참 잘 어울린다. 한동안 이 '눈감고도 보이는 붉은 세상'을 사진으로 찍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방법이 없더라. 아직 포기하지는 않았다.


3. 바람결에 느껴지는 계수나무 향

노랗게 물든 계수나뭇잎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나? 은근히 달달한 솜사탕 향이 난다. 코끝을 강하게 찌르는 향은 아니고, 느껴질 듯 말 듯 은은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바람결을 타고 훅 들어올 때가 있다. 마치 옆에서 누군가 사탕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이사한 아파트 단지에서 우리 동으로 가는 길은 온통 계수나무 가로수다. 그래서 요즘 산책은 늘 달콤하다. 산책길 자체가 사탕 같다.


4. 갑자기 웃는 사춘기 딸
이것은 불시에 찾아온 나의 행복 요소다. 평소 딸은 검은 그림자에 잠긴 듯, 늘 ‘낮은 도’로 대답한다.

“뭐 먹을래?” – “아무거나.”
“어디 갈까?” – “아무데나.”
“숙제했어?” – “으……”

나중에는 ‘응’인지 ‘으’인지 모를, 끝맺지 않은 낮은 음만 흘려보낸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웃으며 ‘솔’ 톤으로 얼굴을 마주 보고 떠들면, 그 순간 집안이 환해진다. 사춘기 아이 둔 집이라면 다들 공감하지 않을까?


5.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

요즘 구름 모양을 본 적 있는가? 극T인 나는 누가 하늘을 보고 감탄할 때마다 이렇게 잘라 말하곤 한다.

“대기가 불안정해서 그래.”

그러니 사람들은 가끔 나더러 정나미 없다고도 한다. 하지만 요즘 구름은 그런 나조차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든다. 기묘하면서도 장엄한 모습들. 어쩌면 그만큼 기후가 더욱 불안정해졌다는 징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그런 하늘이라면, 잠시 정나미 없는 소리쯤 해도 용서받을 것 같다


여러분의 일상에도 분명 그런 순간이 있을 것이다. 괜히 미소 짓게 하거나, 뜬금없이 기분을 들뜨게 만드는 장면들. 한번 떠올려 보자. 아마 그 순간 역시, 여러분 삶을 채우는 소중한 기쁨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