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키비움 J 어 사전 (9월) - 1부
벽돌집 : 붉은 색 벽돌로 만들어진 집, 주로 점토를 고온에 구워 만든 벽돌로 건축된 주택을 가리킵니다. 붉은 벽돌의 색깔은 주로 점토속의 산화철 성분에 나타나며, 튼튼하고 내구성이 좋은 건축자재로 오랜 역사와 함께 다양한 건출물에 사용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도시 복구와 주택 공급이 이루어지면서 붉은 벽돌집이 유행하기도 하였습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1902년에 개교했다. 대구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사립여성소학교였다. 1919년 만세운동을 벌였고, 6·25 때는 미군 부대로 징발되었다. 2004년에는 남녀공학으로 바뀌었다. 이런 사실은 신문만 봐도 알 수 있고, 얼마 전에는 120주년 기념 책자도 나왔다. 긴 역사 속에서 나는 단 3년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때가 가장 변화가 큰 시기였다.
학교로 가려면 가파른 언덕을 한참 올라야 했다. 중간에는 커다란 교회가 있었고, 아래쪽으로는 집들이 이어졌다. 교문을 지나면 운동장이 나오고, 일제시대 때부터 서 있었을 듯한 은행나무가 보였다. 건물 사이를 지나면 70년대 전후에 지어진 듯한 2~3층짜리 건물들이 겹겹이 둘러서 있었다. 그 가운데 중정 옆에 내가 좋아한 빨간 벽돌의 2층 건물이 있었다. 1902년에 지어진 본관의 일부였을지도 모른다. 1층은 과학실, 2층은 미술실이었다. 창틀은 전부 나무였고, 아치형의 긴 창문들이 규칙적으로 늘어서 있었다.
건물 한쪽 끝에는 2층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이 있었다. 발이 닿을 때마다 삐걱 소리가 났고, 먼지가 일었다. 얇은 나무 프레임의 유리 미닫이문을 밀고 들어서면 오래된 나무 냄새, 유화물감 냄새, 석유 냄새가 뒤섞여 그곳만의 냄새가 났다. 나는 그 냄새와 공간을 좋아했다.
양조위의 걸음을 닮았던 첫사랑 선생님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좋았고, 야자 시간에 미술실에 숨어들어 그림을 그리던 것도 좋았다. 전시 준비로 늦게까지 남아 있던 시간, 선배들과 수다를 떨며 보낸 시간도 다 좋았다.
그 시기 대구는 외곽으로 신도시가 들어서며 중심지는 점점 쇠퇴하고 있었다. 학교 안팎으로도 소문이 많았다. 부자들이 많은 외곽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 미술실 건물이 문화재가 될지 모른다는 말, 땅값이 더 오르기 전에 옮겨야 한다는 얘기까지. 소문이 이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좋아하던 빨간 벽돌 건물은 철거되었다. 망치가 한쪽 벽을 무너뜨리자 건물은 금세 영화 세트장처럼 반쪽이 갈라졌다. 미술실 바닥은 낭떠러지가 되었다. 그 자리에서 선생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웃으면서, 이 사진이 언젠가 기념 책자에 실릴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120주년 책자가 왔을 때도 그 사진은 없었다. 그때 받아두지 못한 게 오래 아쉬움으로 남았다.
건물은 사라졌지만 학교 이전은 무산됐다. 땅이 너무 넓어 팔리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었고, 선교사 유적지 때문에 팔지 못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결국 빨간 벽돌집은 사라지고, 재미없이 네모난 건물들만 남았다. 한참 뒤 다시 찾아간 학교에는 더 재미없는 컨테이너 식당이 학교 끝에 들어서 있었다.
지금도 벽돌집이라는 단어를 보면 빨간 벽돌로 만들어진 미술실 건물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철거하지 않았다면 역사관이나 기념관으로 남아 있지 않았을까. 같은 재단의 다른 학교는 실제로 옛 건물을 보존해 기념관으로 쓰고 있다. 그냥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