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시댁으로 가는 길, 운전대를 남편이 쥐고 있을 때는 꼭 동서천 IC로 들어가서 금강 하구 둑 옆길로 갈려서 집까지 간다. 난 군산 IC로 들어가서 대로(大路)를 통해서 가는 운전하기 편하고 빠른 길을 좋아하지만, 여유와 한적함을 좋아하는 남편은 강을 따라 꼬불꼬불 굽은 시골길을 따라가면서 보는 금강 하구가 그렇게 좋단다.
동서천 IC로 들어가서 몇 분만 달리면 넓은 금강하구가 펼쳐진다. 이곳은 말 그대로 금강 하구이다. 밀물에는 물이 많아지고, 썰물에는 물이 줄어들지만 그래도 여전히 강이다. 금강하구둑을 지나서 동백 대교를 지나오면 이젠 강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커버린 바다의 초입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금강을 바라보면 만조에는 물이 가득 차서 파도치고 있고, 간조에는 갯벌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서 갯벌에 사는 망둥어며, 작은 꽃게와 갯지렁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금강이 만나는 군산 바닷가의 조수간만의 차는 다른 서해 해수욕장들의 그것들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낚싯배들이 수위의 높이 따라서 자리 잡는 위치가 다르니 수위 차가 더욱 눈에 띄나 보다. 김훈 작가는 군산 옥구읍에서 시작해서 만경강을 자전거를 따라가면서 서해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서해는 깊이 밀고 멀리 썬다. 갯벌은 육지와 바다의 완충이며 진행형의 대지이다. 갯벌은 오목하고 부드럽다. 바다 쪽으로 나아갈수록 갯벌의 입자는 굵어진다. 육지 쪽은 뻐이고 바다 쪽은 모레이다. (중략) 서해의 힘은 더욱 크게 하구로 파고들고 연안으로 안 겨울 것이 틀림없다. 서해와 달의 당기고 끌리는 모습이 저러하므로 조국의 서쪽 강들은 서해에 닿는 하구에서 저마다의 사랑과 저마다의 소멸의 표정을 따로따로 갖는다. (자전거 여행 中 - 김훈)
나중에 새만금을 따라서 김제로 넘어가다 만경강과 서해가 만나는 입구를 본 적이 있다. 확실히 금강하구에서 보는 모습과는 달랐다. 서해 바닷물이 밀고 들어와 있는 만조의 만경강과 금강의 하구는 크기만 다르고 물이 가득한 비슷한 모습이지만 간조에는 갯벌의 크기나 모양이 각각 다른 모습을 드러냈다. 김훈 작가가 말한 사랑하는 모습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강과 바다도 어떤 사랑이든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나 보다.
잠시 멈춰 서서 갯벌을 바라보면 해수욕장에서 보는 모래 갯벌이 아니라 부드러운 흙으로 가득 찬 갯벌이다. 갯벌 위를 자세히 보고 있으면 갑자기 흙이 움찔하면서 움직이는 것이 보이는데 망둥어다. 망둥어가 흙의 색을 입고 눈의 띄지 않게 갯벌을 뛰어다니고 있다. 흙이 죽은 듯이 보이는 잿빛 뻘은 생명으로 가득했다. 신기하다. 그곳에는 망둥어도 갯지렁이도, 털게도 살고 있다. 숨 쉬는 갯벌에서 살고 있는 생명들은 물이 차고 빠짐에 적응하면서 갯벌에 쌓인 퇴적물을 먹으면서 청소꾼 역할을 톡톡히 한다.
공깃돌만 한 콩 털게와 바늘 끝만 한 작은 새우들도 가슴에 갑옷을 입고 있다. 그 애처로운 갑옷은 아무런 적의나 방어의 지도 없이, 다만 본능의 머나먼 흔적처럼 보인다. 그래서 바다의 새들이 부리로 갯벌을 쑤셔서 게와 조개를 잡아먹을 때, 그것들의 최후는 죽음이 아니라 보시이다. (자전거 여행 中 - 김훈)
금강하구는 겨울 철새도래지로도 유명하다. 금강에서 겨울을 지내는 바닷새들은 갯벌에서 충분히 쉬고 먹으면서 다음 먼 여행을 준비한다. 어찌 보면 오랜 세월 살아온 갯벌의 생명들이 선택한 마지막 고귀한 임무가 이 여행을 위한 보시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금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는 모든 생명들이 제 역할을 하면서 어우러져서 살고 있다.
다시 차를 타고 출발하면서 남편이 말했다.
"여기는 물이 차도 좋고, 이렇게 물이 빠져서 갯벌이 드러나도 좋아.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엔 윤슬이 반짝여서 좋고, 해가 지는 시간에는 노을이 멋져서 또 좋아. "
반박의 여지가 전혀 없이 그날은 남편이 선택이 옳았다. 난 엄지 손가락을 펴 보이며 말했다.
"여보 덕분에 멋진 바다랑 강과 갯벌을 동시에 즐겼네! 역시,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