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조금씩, 변화를 꿈꿉니다

by 골방지기

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때는 명문이라 불렸던 사립 여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3.1 운동 이전에 학교가 세워져서 만세 운동에도 참여하고 이후 역사책에 등장하는 역사적인 사건과 학교의 역사를 같이 해왔다. 그래서 사회 지도층에 진출한 여성 인사들은 선배이거나, 혹은 유명 정치인이나 기업인의 아내가 우리 학교의 선배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평준화 이전의 세대를 거친 선배들에게는 이 학교는 그들의 명예이고, 자부심이었다. 그런 자부심은 평준화 이후 입학생들에게는 해가 지날수록 점점 옅어지긴 했어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교육되었다.


우리 학교에는 많은 전통이 있었다. 졸업 후 25년이 되는 해에 홈커밍 행사를 해왔고, 대부분의 여자 선생님들은 우리 학교 선배였으며, 매주 한 번의 예배 시간과 채플 시간이 있었고, 고3도 열외 없이 3일간의 신앙수련회가 있었다. 동아리 활동도 활발해서 문예부, 미술부, 사진부, 서예부 4개의 부서가 평준화 이전부터 해마다 예술전을 해왔다. 그중에서 우리가 학교를 입학한 그 해에 가장 문제가 된 건 동아리 부서별로 있었던 신입생 군기잡기 행사였다.

시작은 사진부였다. 남자 아이돌같이 잘생기고 인기 많던 선배들이 포진했던 사진부는 외부 출사도 많다는 핑계로 단합이 잘 되어야 한다며 신입생들을 앉혀 놓고 '엎드려뻗치기', '머리박기' 등의 군기 잡기를 했었다. 그 소문이 돌 때 즈음 서예부 친구와 문예부 친구가 전날 얼차려를 받았다며 절뚝거리며 들어왔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던 미술반은 그래도 2-3주는 더 조용했었다. 그러다 2학년 선배 한 명이 사진부 선배에게서 미술반만 기합을 안 받아서 인사를 제일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우리를 미술실 바닥에 무릎을 꿇렸다. 무릎을 꿇고 1시간 동안 훈계를 받고 일어나서 비틀거리면 비틀거린다고 혼났다.


처음이었다. 엄마에게 초등학교 1학년 연락 없이 늦게 들어갔을 때 두들겨 맞은 이후로 매도 구경 못해본 나는 소문으로만 듣던 이런 기합을 받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억울하고 분했었다. 그런데 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을 당하는지 선배들이 말하는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으면서도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었다. 그때 처음 '이게 전통이라서 받아들여야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에 걸스카우트가 앞산 등산로에서 기합을 주다가 경찰 신고가 들어가면서 학교에서도 이 '전통'을 문제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우리는 모두 미술 선생님께 불려 갔었고, 우리도 비슷한 일을 당했었는지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모두가 입을 맞춘 듯이 그런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아마도 이게 전통일까 물음을 가졌던 우리들은 어느새 이 부당한 행위가 우리가 잘못해서 받은 벌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받아들였나 보다.

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되레 당신이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다며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그리고 그 문제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넘기려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곧잘 마음이 약해져서 무의식적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된다.

(중략)
'합리성'이라는 카드를 빌려오기도 한다. 저항하면 오히려 문제가 더 복잡해지거나 악화될 수 있어 나만 손해라며, 남들이 꾹 참고 넘기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논지를 ㅍ녀다. 불의에 저항하는 일은 옳지만 내 가족이나 친구라면 말리겠노라고.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라며 '똑똑한'이들은 그렇게 할 거라고 자기 합리화한다.
임경선의 '부당함에 저항하기' 중


임경선 작가가 지은 '태도에 관하여'라는 책의 '부당함에 저항하기'라는 에세이를 보면 주위가 문제 삼지 않은 상황에서 의연하게 행동하기 위해, 이상한 사람 취급받지 않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된다고 했는데, 아마도 우리들도 그랬었나 보다. 우리 모두는 남들도 당연하니 우리가 그러는 것은 억울했지만 당연한 거고, 어쩌면 다른 동아리보다 약했다는 것에 다행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그런 일로 동아리에게 경고를 준다고 해도, 학교의 분위기 자체가 문제였다. 일부 강성 선배들은 선생님께는 30도 인사, 선배들에게는 90도 인사를 강요하기도 했었고 그것을 이 학교 출신의 선배인 일부 선생님들은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보니 가장 큰 문제였다. 문제가 되는 학생이 교무실로 불려 가서 선생님께 대들다가 선생님이 '지금부터 난 니 선생 아니고, xx기 니 선배야'라면서 혼을 내고 매를 들면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는 뒷얘기도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우리는 부당함에 저항하기는커녕, 지금 보면 당연히 학교 폭력인 그 행위를 학교의 전통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받아들였다.


대학교에 입학했다. 1학년 정원 60명에 여학생은 10명, 기계계열의 공대였다. 복학생 선배 위주로 과가 움직이고 있었고, 분위기도 그런 조직 분위기를 풍겼다. 입학하고 선후배 간의 첫 대면식이 있던 날, 같은 학년이라 당연히 동기라고 생각했던 복학생 선배가 자신에게 인사하지 않는다고 선배들과 함께 우리에게 한참 동안 기합을 주고 군기를 잡았다. 60명의 우리 동기끼리도 얼굴을 모르는데 그중에 끼인 선배가 선배인 줄 상상이나 했을까. 나중에 생각해보니 어이없는 건 나였다. 그 와중에 학습의 효과인지 부당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이미 한번 겪었던 일이다. 그냥 다 이러나 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후에도 우리 학번은 같은 학년의 복학생 선배에게 여러 번, 윗 학년 선배에게 여러 번 굴림을 당했다. 머리 박고 엎드려뻗치는 건 기본이었다. 한 선배는 술만 마시고 얼차려를 줄 때면 술병 뚜껑 위에 머리 박으라고 시켰고, 어떤 선배는 체력을 키워준다며 PT체조를 시켰다. 다 군대에서 배워온 나쁜 모습들이었다. 그때도 우리 학번 동기들은 제대로 저항 한번 못하고 얼차려 이후에 선배들이 하는 '너네가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잘되라고 그러는 거다. 선배니까 이런 얘기를 해준다' 같은 말들에 문제를 크게 만들기 싫어서, 이런 게 사회생활인가 싶어서 피하고, 우리 선배들이 우리를 걱정한다고 합리화했었다.


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 새로운 조직에 들어가면서 군대식 기합을 받는 통과의례를 매번 거쳤다. 그래도 희망적이었던 것은 적어도 나와 내 동기들은 그 전통이라는 통과의례를 끊어내고자 했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이어져 오던 군사 문화를 한 순간에 바꿀 수 없다고 부당함을 합리화시켜 내 안으로 욱여넣으면서 만들어 쌓아 둔 독을 후배들에게는 물려주기 싫었었나 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3학년 선배들에게 혼나고 애들 군기 잡으라고 닦달을 당해도 버텼고, 대학교 때 새로운 후배들이 들어왔을 때 군기 따윈 없는 대면식을 만들고 그런 문화를 만들겠다고 다짐은 했었다.(다짐은 했었지만 복학생이 끼니 결국 군대 문화는 따라왔다. 우리 학번이 한 다짐의 효과는 내 동기들이 제대를 하면서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부당함에 나서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는 못했지만 소심하게 아주 조금씩 우리가 겪은 부당함을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게나마 세상은 조금씩 변화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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