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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 Sep 29. 2021

성교육, 어떻게 해요?

식상하고 뻔하지만 당연한 사춘기 성교육

 

"이런 거 어떻게 생각해? 요즘 성교육이 너무 오픈되어 있어서 초등학교 4학년도 호기심에 야동을 본다는데, 내 아들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괜히 순진한 애들한테 학교에서 안 가르쳐도 될 걸 너무 일찍 가르치는 거 아니에요?"

 "그러게요. 뉴스에 남자애가 소꿉친구 여자애가 불러서 집으로 갔더니 홀딱 벗고 있어서 관계를 했다는데, 남자애도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걸 남자애가 어떻게 참아요? 아무튼 나중에 남자애도 여자애가 그러니 불편했던지 피해 다니니까 성폭행당했다고 신고했대요. 나중에 밝혀지긴 했지만 우리 아들이 그런 애를 만나면 어떡해요. 아들 가진 엄마들 너무 불안하네요. "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누구는 학교에서 너무 과하게 성교육을 하는 것이 더 성적 호기심을 일으키는 것 같다는 것이고, 다른 이는 아들은 여자애가 벗고 덤비면 어쩔 수 없는데, 그럴 경우 어떤 대응을 가르쳐야하냐는 것이었다. 이런 일에 남자여자가 어디있냐? 어릴때 부터 교육이 필요하다고 평소에 주장하던 이들의 입장에서는 대뜸 반론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성교육을 해서 호기심이 생기는 게 아니라, 호기심이 생길 나이에 오히려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해서 그런 야동을 봤을 때 잘못된 인식이 생기는 걸 막아야죠."

 "그렇게 먼저 유혹해놓고 법을 악용해서 신고하는 꽃뱀들도 요즘 언론에 좀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남자도 No를 연습해야죠. ‘마음은 싫은데 몸이 좋다고 나도 모르게 허락했다, 남자들은 어쩔 수 없다’ 이런 건 말이 안 되지요. 그리고 설령 그런 사고가 있었다고 해도 서로 간의 예의는 지켜야지요. 그런 일이 있고 나서 피하고 도망 다니면 누구라도 모멸감은 느끼겠어요. 어떤 관계든 끝맺는 방법이 중요하죠"

 


가장 오래된 관계 : 남과 여


 어떻게 보면 가장 오래된 관계는 남자-여자 사이의 관계가 아닐까? (‘남-녀’의 표기 순서가 불편하신 분들이 있다면, 나에게 ‘남녀-여남’ 단어의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ㄱ,ㄴ,ㄷ순으로 쓰겠다) 어떤 신화에서든지 인류의 시작은 남자-여자의 관계에서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세상에 태어나 주변 사회를 깨닫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느낀 남-여의 관계는 얼마 전까지도 여자가 완전한 약자였다. 국민학교 시절 번호의 앞번호는 우선 남자애들이 생일 순으로 채우고 뒷번호를 여자애들이 생일 순으로 채웠다. 축구부나 야구부에 여자애들은 참여할 수 없었고, 노골적으로 ‘회장은 남자애가 해야지’라고 말하는 선생님도 계셨다. 여자 중학교,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넌 어른스럽게 생겨서 남자 많이 꼬이겠다’ 라며 예쁘게 생긴 친구 불러놓고 어깨를 만지며 말하던 선생님, 일부러 브래지어 끈을 만지면서 등을 쓰다듬는 선생님, 귓불을 꼬집는 선생님, 화가 나면 옷을 벗고 나가라고 외치던 선생님 등등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고 말도 안 되는 경우는 항상 있었다. 대학교에서도 음란 패설에 익숙한 척해야 쿨하고 멋진 친구고, 혹여나 싫다는 표현을 하면 다 알면서 내숭을 떤다는 놀림을 받아야 했다. 어떤 선배는 혼자 짝사랑하던 여자애에게 고백했다 차이고는 ‘지가 꼬리 치면서 선배 선배 그러더니 고백하니 싫다고 한다’며 소문내던 일도 있었고, 다른 과 여학생에게 가슴이 크다고, 입술이 섹시하다고 엉덩이가 크다고 각각 별명을 붙여서 부르고 다니던 일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누구 하나 ‘싫어요!’라고 말할 만도 한데, 그 당시에 우리가 받은 성교육은 성이란 부끄럽고, 밖으로 나와선 안되고, 나쁜 일을 당했을 때 ‘여자가 그럴만했다’라는 것이었다. 예쁘니까 선생님들이 만져주면서 예뻐해 주는 거고, 여자애가 웃음을 흘리고 다녀서, 짧은 치마를 입어서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남자들이 어쩔 수 없이 그랬다는 것이다.

 

이젠 달라지고 있다


 그런 모습들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2000년대 초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도 부장님이 신업 여사원들을 양쪽에 앉히고는 친밀함의 표시로 술을 따르게 하고 어깨를 만지면서 노래를 부르던 일들이 비일비재했었다. 2010년을 기준으로 1~2년 차이로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가 언론에 등장하면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성교육을 강화하고, 사내 성추행의 일례를 교육하면서 ‘싫어요. 하지 마세요’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생겼다. 불과 10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사회에서 각종 미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도 그 이후였다. 우리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은 그만큼 어리다. 아직도 근본적으로 성인지 감수성의 DNA를 장착하는 것보다는 드러난 피해의 해결이 우선이었다.

 공교육에서 인권 교육이 강화되면서 아이들도 내가 소중하니 너도 소중하다는 것은 배우는데, 아직 학교에서 하는 성교육은 생리적인 교육에 불과하다. 생식기의 이름을 배우고, 2차 성징이 다가오면 생리대의 사용법을 배운다. 일부 중고교에서 콘돔의 사용법을 가르치긴 하지만 그나마 부모들의 항의를 받았다.


우리 아이들에게 섹스하라고 가르치는 거야?’

 

 교육이라는 게 그렇다. 이전 세대가 배운 대로 가르친다. 시기로 본다면 2~30년 전에 배운 지식과 기준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셈이다. 절대적이고 불변인 진리야 그래도 상관없지만 불과 10년 안팎으로 변한 성인지 감수성을 기성세대의 기준으로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에게 가르치려 하니 여기저기서 삐걱댄다.

 

그럼 어떻게 성교육을 해?


 식상하고 교과서적인 이야기지만 아기 때부터 가르쳐야 할 처음 성교육은 나를 제대로 알고 사랑하는데서 시작된다. 내 몸이 소중하니 니 몸도 소중하고, 내 의사가 소중하니 너의 의사도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치면 된다. 물론 어느 순간이 되면 생식기의 구조, 이름, 생리의 이유, 대처법 등을 가르쳐야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가르쳐야 할 성교육의 작은 일부분일 뿐이고, 결국 성교육의 시작도 인권교육의 시작과 맥을 같이 한다.

 사춘기가 되면 다른 성이 궁금해지고 관계에 관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딸들도 사춘기 초입에 들어서면서 로맨스가 좋고 드라마의 키스신에 열광하고 연애소설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사춘기에 들어선 남자애들도 성인물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뭐, 그런 것들이야 자연스러운 발달과정이고, 이때 진짜 중요한 것은 부모와의 관계가 아닐까?

‘키스는 어떻게 해? 나 여기저기 털이 나기 시작했어. 야동에서 여자들은 진짜 좋아서 그러는 거야?’  

엄마가 편하면 엄마에게, 엄마가 불편한 아들들은 아빠에게 자연스럽게 물어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사춘기 성교육의 첫 번째가 아닐까? 그럴 때 부모들은 내가 어릴 때 배운 대로 성이 부끄럽고 나쁘다고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관계가 그러하듯이 이성 간의 관계에서도 배려와 존중, 교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줘야 한다. 피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런 교감을 바탕으로 한 관계에서 혹여 발생할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일들을 책임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맞다. 남자든 여자든 나의 의사에 반할 때 싫다고 말해야 하고, 폭력을 당했다면 너의 잘못이 아니라 폭력을 저지른 이가 잘못했다고 가르쳐야 한다.

 

 부모의 입장에서 불안해하는 이들은, 그들이 자라온 시대에 배운 사고방식과 새롭게 바뀌고 있는 사회에서 어디에 기준을 두어야 할지 헷갈리는 것이다. 딸을 둔 부모 입장에서는 사회가 안전했으면 좋겠고, 아들을 둔 입장에서는 남자라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 것들이 범죄라니 불안한 것이다.

 내가 듣고 보기에 불편하다고, 언제까지 바뀌고 있는 세상을 외면하면서 아이를 감싸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럴수록 아이들은 쉬쉬하면서 외부에서 자극을 찾게 된다. 외부에 노출된 자극적인 미디어 컨덴츠에서 성을 배워 왜곡된 성적 환상이나 성적 지식을 가지는 것 보다 부모와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과 배려와 관계의 중요성을 배우는 것이 제대로 된 사춘기 성교육이다. 이렇게 조금씩 변하다 보면 지금의 아이들이 기성세대가 되어 있을 때는 사회의 여러 모습들이 달라져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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