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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지기 Oct 12. 2021

캠핑의 시작

 내가 어릴 때는 지금처럼 캠핑 장비가 다양하지 않았다. 단순히 텐트 하나와 작은 드럼통, 고기 불판, 코펠 세트만 들고 아무 데나 가서 밥을 해 먹고 텐트 치고 자고 오던 시절이었다. 아빠도 딸들을 데리고 가끔 밖으로 나가셨다. 그리고 어디서 고기 불판으로 쓸 것들을 그렇게 찾아오시곤 했다. 대리석 돌판도 주워오시고, 슬라브 판도 주워오셔서 작은 드럼통에 불을 피워 판을 올려놓고 고기를 구워 먹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정한 노지 캠핑이었는데, 어릴 땐 그게 그렇게 싫었다.(10대이후의 기억이다. 기억에 드러나있지않은 훨씬 어렸을때는 마냥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어디서 주워온 판 위에 고기를 구워 먹는 것도 싫었고, 모래밭 위에 텐트를 치고 자는데 바닥이 울퉁불퉁해서 도저히 잘 수 없는 불편함은 더더욱 싫었다. 돌이나 낮은 수풀 뒤에 땅을 파고 볼일을 봐야 하는 것은 끔찍했었다. 지금은 화장실용 텐트나 이동식 변기도 있고 텐트 바닥에도 에어매트를 깔고 있으니 불편함이 훨씬 덜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러다 보니 몇 년 전까지도 나의 여행은 편안함이 우선이었다. 불편하고 낯섦이 싫어서 마음에 든 호텔 체인만 계속 이용했었다. 아이들과 여행이 가능해졌을 때에도 우리는 늘 가던 곳의 같은 호텔만 이용했다. 식당도 가 본 적 있는 익숙한 식당에만 갔고 호텔 수영장에서 여행의 대부분을 보냈다. 맛집이 생겼다고 해도 새로운 곳을 도전하는 곳은 큰 모험이었다. 바가지도 쓰지 않아야 했고, 맛도 위험을 부담하는 만큼 탁월해야 했다. 그런데 대부분 실패했고 결국은 호텔 레스토랑이 제일 맛있다는 결론만 내렸다. 이렇게 몇 년을 같은 곳만 가다 보니 아이들도 슬슬 지겨워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찾아왔다.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남편에게는 하나의 고민이 생겼다.

어떻게 하면 맛있고 편하게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을까?


 집에서 구워 먹으면 온 집안이 기름과 고기 냄새로 가득 덮이고, 식당에 가서 먹자니 코로나 때문에 너무 불안하고...... 그래서 남편이 선택한 것은 불판을 사서 밖에 나가서 구워 먹는 것이었다. 온라인몰에서 캠핑 화로대와 필요한 식기, 작은 의자 4개를 샀다. 딱 고기 구워 먹는데 필요한 정도로. 그리고 주말에 남편은 동네 바베큐장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는 다음날 작은 텐트와 테이블, 타프 등 캠핑에 필요한 장비를 샀다. 경치 좋은 캠핑장에서 고기를 구워 먹겠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그렇게 아주 단순한 이유로 우리 가족은 불편함으로 가득해서 절대 안 할 것 같았던 캠핑을 시작했고 벌써 20군데가 넘는 캠핑장을 다녔다. 의외로 캠핑은 우리 가족과 잘 맞았다. 낯선 것을 싫어하고 익숙한 것이 좋았던 우리는 비싸지 않은 비용으로 어디를 가든지 항상 같은 주방과 침실과 이불을 가진 익숙한 숙소(-텐트)를 얻었고, 돈을 좀 더 들여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니 훨씬 더 편한 야외생활이 가능했으며 코로나 시대에 내 차로 어디든지 가서 타인과 마주치지 않고도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캠핑의 야외생활이 익숙해질 때 즈음 우리는 다른 재미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 시작한 것이 그 지역의 대표 맛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캠핑 간 지역의 산지 재료를 사다가 요리해먹었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어떤 재료를 써도 내가 아는 맛의 요리가 되었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피크타임을 피해 식당을 이용하기로 했다.

 식당을 선택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 지역의 재료로 만들어져야 하고, 대표하는 맛이어야 했다. 먼저 지역별 특산품을 알아놓고 검색 서비스에서 지역 맛집을 검색하는데 카페 같은 어디든지 가서 먹을 수 있는 일반적인 것들은 뺀다. 그다음 리뷰를 낮은 점수 순으로 확인을 한다. 맛있는 집들은 낮은 점수 순으로 검색을 했을 때 맛보다는 서비스에 대한 불만으로 낮은 점수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몇 개를 골라서 심층 분석에 들어간다. 전국 캠퍼까페나 블로그, SNS 후기를 확인해서 광고글을 걸러 내고 나면 외지인이 인정하는 맛집이 아닌 지역주민들이 찾아가는 맛집이 나온다.

 그렇게 고심해서 찾아간 집들이 다 맛있을까? 맛이라는 것이 참 주관적이어서 참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정말 맛있다고 알려진 평양냉면을 먹어보면 심심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그 심심한 맛이 어느 순간에 깨끗한 고기 육수 맛으로 느껴지고 그러고 나면 육수의 깊은 단맛이 올라온다. 다른 지역의 맛들도 마찬가지다. 지역 맛집일수록 익숙하지 않은 낯선 맛들이 있다. 예전 같았으면 절대로 도전해보지 않았을 맛들이다. 속리산의 산채 나물은 쓰지만 씹을수록 고소했고, 완도의 전복은 살짝 굽기만 해도 고소해서 버터 따윈 필요가 없었다. 영월 한우촌에서 파는 고기는 어디서 구워 먹어도 입안에서 녹았다. 무주의 어죽과 도리뱅뱅이는 비린내를 예상하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밥 한 공기 더 추가하게 만들었다. 섬진강의 재첩국, 통영 중앙시장의 충무김밥은 재료가 신선하면 뭘 해도 맛있다는 진리를 보여줬다.


 시인 박준은 산문집 <운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중 <취향의 탄생> 편에서 그의 여행 취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낯가림이 심해 익숙함을 찾던 시인은 익숙한 여행만 다니다가 여행 중 여러 지역의 음식을 맛보면서 미각에 대한 취향이 생겨나고 시각, 사람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우리 가족의 익숙하고 편안함만 찾던 여행이 달라진 이유도 미각이었다. 그렇게 식당에 가서 외식하기 어려운 시기에 맛있게 고기를 구워 먹기 위해 시작해서 더 맛있고 귀한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여행이 되어버린 캠핑이었다. 그런데 시인의 말마따나 배가 부르니 눈으로 아름다움을 쫒나 보다. 올해 들어서서는 캠핑장 주변의 볼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통영의 바닷가에서 해안가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산청에서는 지리산의 산세와 천왕봉의 위엄을 보았다.

 언제나 옳은 제주에서는 푸른 여름 바다와 오락가락 변하는 날씨에 변하는 한라산을 보았고, 태안에서는 동해만큼 맑은 바다와 어디서도 볼 수 없던 낙조를 즐겼다. 영양에서는 아무데서나 볼 수 없는 별이 가득해서 당장이라도 쏟아질 것 같던 밤하늘을 보았다. 그렇게 멋진 전국의 풍광들을 보고 있자면 내 속의 DNA가 고향을 찾은 듯한 편안함과 익숙함을 느꼈다. 2-3일 익숙한 편안함 속에서 지내고 오면 다시 그 느낌이 그리워졌다.

산청 캠핑장에서 바라본 지리산 천왕봉

  그러다 좀더 자연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고정된 캠핑장이 아니라 정말 자연이 주는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는 곳이면 아무 곳이나 머무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서해바다는 태안의 캠핑장도 좋지만 내변산의 높은 절벽 위에서 보는 서해가 더 멋있었고, 제주에서도 김녕 해안 도로 어딘가로 들어간 풀밭에서 보는 바다와 산 중턱의 어떤 초원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의 풍경이 최고였다.

  가족끼리 시작한 여행이어서 박준 시인처럼 취향이 사람으로 옮겨갈 가능성은 적어 보이지만 언젠가는 진정 자연이 주는 편안함 속에서 익숙함을 즐기게 되지 않을까? 물론 그러려면 더 많은 장비의 투자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한번 꿈꿔본다. 동해안 바다가 잘 보이는 7번 국도의 어느 주차장에 캠핑카를 세워두고 보름 달돋이를 보고 새벽에 일어나서는 해돋이를 보는 상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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