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7~21

by 강연우

“아... 처음 같은데요.”

“그럼 여기 성함이랑 주민번호 그리고 연락처 작성해 주세요.”

그 간호사는 지극히 사무적인 말투로 리셉션 데스크 위에 놓여있는 작은 종이를 가리켰다. 이 종이에 나의 개인정보를 기록하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았으나 이곳의 규칙이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사회생활이란 이런 것이다. 하나하나의 규칙과 규범이 시스템을 이루고 그 시스템 안에서 순응하며 살아가야 한다. 개인 정보를 공유하거나 자유를 일부 희생하고 사회적 편의를 누리는 것이다. 물론 희생되는 자유와 얻는 사회적 편의는 사람마다 다르다. 사회적 거물이 되면 일반적인 시스템 밖의 영역에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나 같은 잔챙이들은 그 시스템 안의 규정된 영역 즉 어항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어항을 벗어나는 순간 대부분의 경우 비극적인 결말이 예상될 뿐이다.

주어진 양식을 작성한 후 삐뚤빼뚤 쓰인 글씨를 부끄럽게 생각하며 간호사에게 건넸다. 작성된 종이를 건네어받은 간호사는 무심히 내 정보를 병원 컴퓨터에 입력하며 물었다.

“오늘 어디가 불편하셔서 오셨어요?”

“............”

“어디가 아프세요?”

“네... 저 이명이 있는 것 같습니다. 머리도 좀 아프고요.”

“혹시 열나시나요?”

“아니요. 열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잠시만요. 체온 좀 잴게요.”

간호사는 데스크에서 일어나 체온계를 들고 손을 뻗어 나의 귀에 체온계를 꽂아 넣었다. 좀 세게 넣는 듯하여, 약간의 불쾌감이 몰려왔다.

“열은 없으시네요. 언제부터 그러셨어요?”

“오늘 아침부터 그런 것 같아요.”

“앞에 의자에 앉아서 잠시 대기해 주시면 진료순서가 되었을 때 말씀드릴게요.”

나는 오늘부로 이 병원의 관리대상이 된 것이다. 그게 좋든 싫든 간에 말이다.

대기실에 앉을 만한 곳을 찾으려 두리번거리다 입구 구석진 곳에 위치한 의자의 빈자리를 발견하고 그곳에 앉았다. 의자에 앉아 방금 전 간호사의 다소 불친절한 듯한 태도를 떠올리며 아마 그 간호사도 처음에는 친절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선택한 생존전략이 무표정과 사무적인 말투였을 것이다.

병원 안에서는 숨쉬기가 쉽지 않았다. 히터에서는 뜨거운 바람이 나오고 환자들이 배출하는 열기와 각종 바이러스, 세균등이 공기 중에 떠다니며 서로의 몸에 주입시키는 느낌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이곳에 온 사람들을 이 시스템 안에서 다시는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물론 은근히 풍기는 소독약 냄새가 조금은 마음을 안심시키지만 이것마저도 몸에 그리 좋지는 않을 것 같았다.

‘바이러스와 세균과 소독약과 항생제, 질병과 백신’

이 끝없는 창과 방패의 싸움은 거대한 시스템이 되어, 그 안에 종속된 사람들은 기계 속 톱니바퀴처럼 쳇바퀴를 돌다가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그 안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법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30분가량 지났을까?

진료실 앞에 서 있던 키 큰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박귀용 씨~ 2번 진료실 앞으로 와주세요. 박귀용 씨!”

“네”

짧게 대답하고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2번 진료실이라고 표시되어있는 문 옆 의자에 앉았다. 멍하니 정면을 응시하고 있으니 하얀 벽과 그 앞을 분주히 지나다니는 간호사와 환자의 움직임이 보였다. 멈추면 넘어지는 자전거라도 된 것처럼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인다.

‘정말 멈추면 안 되는 것일까? 잠시 아주 잠깐만이라도 세상 모든 것들이 멈추는 그 순간이 오게 되면 어떻게 될까?’

“박귀용 씨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는 곳으로 가고 있던 나는 누군가의 부름에 반응하여 의자에서 일어나 진료실로 들어가는 몸에 이끌려 어김없이 다시 세상 속에 종속되고 만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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