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드 1
“자! 그럼 청력 검사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지구에서 우주로 보내는 듯한 신호음이 들려왔다.
“삐” “삐” “삐” “삐” “삐”
높은음부터 점점 낮은음으로 소리는 들렸고 ‘삐’ 소리가 날 때마다 빨간 버튼을 눌렀다. 처음에는 확신을 갖고 눌렀으나, 점점 시간이 갈수록 이 소리가 진짜 들리는 소리인지 아니면 나의 상상이 만들어 내는 허구의 소리인지 구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네, 검사 다 되었습니다. 이제 밖으로 나오세요.”
그렇게 청력검사를 마친 다음 검사실에서 나와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진료실 앞 복도 의자에 앉았다.
접수, 기다림, 진료, 검사, 다시 진료 이곳의 톱니바퀴는 제법 잘 돌아가는 곳이다. 톱니가 오래되면 새로운 톱니로 교체될 것이고, 이 공간과 이곳의 시스템은 영원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귀용 씨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진료실로 들어가니 이제는 그곳이 익숙해졌는지 진료실 의자가 친숙해 보이며, 만화 속 건담의 파일럿 조종석에 탑승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이 의자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쳐간 것일까?’
의사 선생님은 방금 전 청력 검사실에서 측정한 나의 청력이라며 꺾은선그래프 모양의 검사지를 보여주었다.
“자 여기 검사지 보이시죠? 지금 박귀용 님의 청력이 왼쪽 귀는 정상 수준보다 좀 낮고 오른쪽 귀의 청력은 고주파 영역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요. 즉 오른쪽 귀의 청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여요. 여기 고주파대에서 연속된 3개의 주파수에 대한 인식이 정상범위의 3분의 1 수준이에요. 이런 증상의 경우 흔히 돌발성 난청일 확률이 높은데요. 발생원인은 특정할 수 없지만 주로 과로, 스트레스 및 생활습관 또는 바이러스감염에 의해 발생해요. 치료약으로는 고함량의 스테로이드 소염제와 혈행개선제, 항바이러스제, 이뇨제등을 처방드릴 거예요. 일단, 오늘이 화요일이니 4일분 약을 처방해 테니까 금요일에 꼭 다시 병원에 내원하세요. 뭐 궁금하신 게 있으실까요?”
빠르게 계속되는 의사의 말에 무엇을 물어보아야 할지 도무지 생각의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귀가 먹먹하니 마음도 먹먹해진 것일까 나의 머릿속에는 돌발성 난청이라는 말만 맴돌 뿐 어떠한 질문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없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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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방전은 의사의 머리에서 나와 컴퓨터를 통하여 종이로 프린트되어 간호사가 나에게 주었고, 나는 카운터에 있는 약사에게 그 약사는 조제실에 있는 약사에게 주었다. 사실 그 조제실에 약사가 있는지 면허가 없는 약 분류 전문가가 있는지 로봇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의사의 처방이 나를 포함한 4 사람에게 건네졌고, 조금만 기다리면 나의 병을 치료해 줄 것으로 기대되는 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약국 안을 둘러보니, 이곳은 생명 연장의 물품들로 가득한 보물 창고 같았다. 그러다가 약국 한켠에 바퀴벌레 및 개미 살충제가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살리고 사람에게 필요 없는 것들은 죽인다. 간단한 논리다. 시스템에서 효용성이 없어진 자들이 사라지듯이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사피엔스라는 종의 잔인함은 약국에서조차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