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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Nov 04. 2023

너의 장례식에서

펫로스 가벼운 그 이름(1)


1


그날은 맑은 봄날이었다. 내가 선 곳은 오래전 그 아이와 함께 왔던 바닷가였다.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나는 어른이 되었고 그 아이는 내 품에 잠들어 있었다는 것뿐. 나는 그 아이를, 아니 한 줌이 되어 버린 그것을 끌어안고 멍하니 서 있었다. 좀처럼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금 전 뜨거운 불꽃에 들어갔다 이내 새하얗게 변해 버린 것을 두 눈으로 보고도 여전히 믿을 수가 없는 현실이었다.


몇 년 만에 찾은 바다가 짧아져 버린 자갈밭만큼이나 지독히 낯설었다. 그럴수록 더욱 품 안에 든 것을 끌어안았다. 그렇게라도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이미 떠났지만 아직은 이 안에 있다고. 조금만 붙잡아도 되지 않냐고 허망함에 소리치고 있었다. 차오르는 눈물보다 더 큰 울음이, 눈앞의 바다보다 더 큰 바다가 속에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그곳을 다시 찾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그런 식으로 추억의 장소를 찾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다시는 그곳에 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정말 기억에만 남겨야 할지 모른다.




2


숨이 멎은 아이를 화장하러 가는 길. 차 안에서 나는 연신 믿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아직 손에 만져지는 부드러움이 이내 가시지 않았는데, 여전히 닿고 있는데, 더 이상 닿을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밤새 쓰다듬으며 했던 작별 인사는 너무도 짧았다. 아직 못다 한 말이 남았고 전하지 못한 사랑이 쓰라렸다. 녀석은 내 옆에서 계속 잠들어 있었다. 나는 깨어 있어도 깨어 있지 않은 듯했다.


지독한 시간이 찾아올 거라는 걸 나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어쩌면 이별보다 앞으로 올 시간이 더 두려웠을지 모른다. 얼마나 부서지고 헤매야 다시 일어설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내 일생은 그 순간부터 달라질 거라는 걸 스스로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여전히 그 시간에 머물러 있다.






이 글을 쓰기까지 많은 날과 숱한 주저함과 망설임이 스쳐갔다. 묻은 기억을 이 자리로 가져오는 것이, 나를 다시 그곳에 데려다 놓는 일이 과연 나를 치유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다. 이 몸부림이 나를 헤집는다 하여도 매 순간 한 자 한 자 토해낼 것이다.


‘펫로스’ 이 가벼운 이름처럼, 조금이나마 조금이나마 가벼워질 수만 있다면. 그것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어도 좋을 것 같아서. 불가능이란 우물에 돌을 던져 보기로 했다. 이 파장이 나를 어디로 인도할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곳엔 오로지 내뱉음만이 있다. 나의 언어가 당신에게만은 가벼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만큼은 아프지 않았으면 해서.


이 아픔이 당신께 닿아 다른 의미가 된다면 우리의 고통이 펫로스라는 이름 하나로 불리듯 언젠가 이 아픔도 쉬이 말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해서.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

: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경험하는 상실감과 우울 증상을 일컫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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