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로스 가벼운 그 이름(1)
그날은 맑은 봄날이었다. 내가 선 곳은 오래전 그 아이와 함께 왔던 바닷가였다.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나는 어른이 되었고 그 아이는 내 품에 잠들어 있었다는 것뿐. 나는 그 아이를, 아니 한 줌이 되어 버린 그것을 끌어안고 멍하니 서 있었다. 좀처럼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금 전 뜨거운 불꽃에 들어갔다 이내 새하얗게 변해 버린 것을 두 눈으로 보고도 여전히 믿을 수가 없는 현실이었다.
몇 년 만에 찾은 바다가 짧아져 버린 자갈밭만큼이나 지독히 낯설었다. 그럴수록 더욱 품 안에 든 것을 끌어안았다. 그렇게라도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이미 떠났지만 아직은 이 안에 있다고. 조금만 붙잡아도 되지 않냐고 허망함에 소리치고 있었다. 차오르는 눈물보다 더 큰 울음이, 눈앞의 바다보다 더 큰 바다가 속에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그곳을 다시 찾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그런 식으로 추억의 장소를 찾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다시는 그곳에 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정말 기억에만 남겨야 할지 모른다.
숨이 멎은 아이를 화장하러 가는 길. 차 안에서 나는 연신 믿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아직 손에 만져지는 부드러움이 이내 가시지 않았는데, 여전히 닿고 있는데, 더 이상 닿을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밤새 쓰다듬으며 했던 작별 인사는 너무도 짧았다. 아직 못다 한 말이 남았고 전하지 못한 사랑이 쓰라렸다. 녀석은 내 옆에서 계속 잠들어 있었다. 나는 깨어 있어도 깨어 있지 않은 듯했다.
지독한 시간이 찾아올 거라는 걸 나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어쩌면 이별보다 앞으로 올 시간이 더 두려웠을지 모른다. 얼마나 부서지고 헤매야 다시 일어설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내 일생은 그 순간부터 달라질 거라는 걸 스스로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여전히 그 시간에 머물러 있다.
이 글을 쓰기까지 많은 날과 숱한 주저함과 망설임이 스쳐갔다. 묻은 기억을 이 자리로 가져오는 것이, 나를 다시 그곳에 데려다 놓는 일이 과연 나를 치유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다. 이 몸부림이 나를 헤집는다 하여도 매 순간 한 자 한 자 토해낼 것이다.
‘펫로스’ 이 가벼운 이름처럼, 조금이나마 조금이나마 가벼워질 수만 있다면. 그것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어도 좋을 것 같아서. 불가능이란 우물에 돌을 던져 보기로 했다. 이 파장이 나를 어디로 인도할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곳엔 오로지 내뱉음만이 있다. 나의 언어가 당신에게만은 가벼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만큼은 아프지 않았으면 해서.
이 아픔이 당신께 닿아 다른 의미가 된다면 우리의 고통이 펫로스라는 이름 하나로 불리듯 언젠가 이 아픔도 쉬이 말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해서.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
: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경험하는 상실감과 우울 증상을 일컫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