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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Nov 11. 2023

이제는 현관에서 반겨 주는 이가 없어

펫로스 가벼운 그 이름(4)


집에 가기 싫었다. 집에 가면 있어야 하는 존재가 이제는 없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마주해야 하는 날, 집에 가기가 싫었다. 늘 있던 존재가 없는 집이 상상이 가지 않아서 문을 열기가 무서웠다. 집에 들어가지 않고 버텼다. 퇴근을 미뤘다. 배회했다. 걸음을 늦췄다. 집에 가면 반겨 주는 녀석이 없으니 그 허전함에 질식할까 봐, 그 낯섦에 숨이 턱 막힐까 봐, 집으로 향할 때면 언제나 재촉하던 발걸음을 처음으로 멈추고 말았다. 귀갓길부터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함께 살던 식구가 세상을 떠나자 달라진 집 안 풍경에도 적응을 해야 했다. 가장 먼저 주방 출입을 막던 가림막을 치웠다. 늘 넘어 다니던 가림막이 없으니 두 다리가 허전해서 멈칫거렸다. 그 길을 그냥 지나는 게 너무도 어색하기만 했다. 애석하게도 그 낯섦이 익숙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외출도 달라졌다. 그동안 저녁 약속은 되도록 피했다. 제시간에 밥을 챙겨 줘야 해서, 내가 없으면 밥을 잘 먹지 않는 응석받이가 있어서, 밥을 먹이는 게 하루 중 가장 마음이 쓰이는 일이라서. 약속보다 녀석의 밥이 더 중요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시간 맞춰 밥을 챙기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귀갓길에 발걸음을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밥을 먹지 않았을까 봐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된다. 너의 죽음으로 나는 비로소 자유로운 몸이 된 걸까. 자유라는 이름이 또 다른 족쇄가 되어 나를 조여 왔다.




없는 존재에 대한 낯선 감각이 익숙한 감각으로 바뀌어 더욱 큰 파도로 돌아와 나를 덮쳤다. 정말로 이 세상에 없다는 것,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 모든 일이 현실이라는 것. 받아들임은 곧 고통이었다. 부정해도 달라지는 것 하나 없고, 받아들여도 나아지는 것 하나 없는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이제는 약속도 자유롭게 잡을 수 있고 여행도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데, 조금도 자유롭지도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 맛있는 걸 먹으러 가지 않아도 되고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데, 다 필요 없는데, 너만 있으면 되는데, 네가 없어서 울었다. 매일 밤 울었다. 버스 안에서도 울었고 걷다가도 울었다. 밥을 먹다가도 울었다. 슬픔은 제멋대로였다. 한동안 나는 눈물의 강에 배를 띄워 놓고 노를 젓지 않았다. 강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마를 때까지.




몇 해가 흘렀다. 나는 배에서 내렸다. 집을 나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묻어 나오는 슬픔은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내가 나가는 걸 누구보다 아쉬워하던, 내가 오면 누구보다 반가워하던 그 맑은 눈동자를 더는 볼 수 없지만, 나는 오늘도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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