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로스 가벼운 그 이름(3)
봄이 싫다. 벚꽃이 싫다. 분홍빛의 만개가 보기 싫다. 너를 보내고 맞이한 첫 번째 봄에 대한 감상이었다. 이제는 사계절 중 봄이 가장 싫다. 무더운 여름보다 더 반갑지 않았다. 네가 떠난 계절이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너의 생명줄을 부여잡고 병원을 오갈 때 눈치 없게 눈부셔서. 내 인생에 봄은 사라질지 모른다는 암울한 그늘이 드리워서. 네가 떠나기 전 활짝 피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저 꽃을 그리도 미워했다. 너는 뭐가 그리 좋아서 환하냐고 쏘아봤다. 꼴도 보기 싫었다. 벚꽃이 흩날리는 날 모두가 그 길을 걸을 때 밖을 나가지 않았다. 사람들의 얼굴에 번진 발그레한 미소에 나마저 져버릴까 봐. 모든 꽃이 져서야 밖을 나섰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봄이 찾아왔다. 한차례 분홍 비가 내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스러져버리는 것에 누군가는 아쉬울 즈음 거리를 나섰다. 자박자박 길을 걷다 우연히 고개를 들어 올린 어느 골목길에서 한 벚나무를 만났다. 무엇이 겁났을까. 무엇이 두려웠을까. 왜 저 꽃을 바라보지 못하였나. 나는 왜 저 예쁜 꽃을 미워했나. 나보다 어여쁘고 나보다 생기 있고 나보다 생을 잘 아는 꽃잎을 왜 탓했을까. 봄의 생기를 왜 거부했을까. 왜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보지 못하였을까. 미안함에 고개를 떨구었다. 나에 대한 미안함이었을까. 아무렴 좋다고, 발아래에 밟히는 분홍빛이 나를 위로하는 듯했다. 꺼져가는 생명에서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으로 보였다. 벚꽃을 벚꽃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흐드러지게 피었다 져서야 비로소 눈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의 흐름이 한 걸음 다가와 물드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봄을 맞이했다.
아직은 봄과 어색하게 인사한다. 다음 해는 조금 다를까. 힘없는 기대를 보태어 본다. 아니어도 괜찮다. 벚꽃은 또 필 테니까. 봄은 또 올 테니까. 나는 아니어도 봄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곁을 떠난 이가 마지막 숨을 뱉은, 그 숨이 묻어나는 계절의 바람에 우리는 한 없이 꺾이곤 한다. 하지만 계절은 돌아오고, 그 속에서 우리는 정처 없이 떠도는 것 같지만 어디론가 향하고 있음을 언젠가는 알게 된다. 그건 지금이 아니어도 좋다. 바람엔 그저 몸을 실어야 한다. 바람을 애써 거스를 필요는 없다. 바람이 불면 넘어지고 서서히 몸을 일으키면 된다. 벚나무가 언제 졌다는 듯 봄이 오면 다시 꽃을 피우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언젠가 봄의 활개가 낯설지 않을 날이, 화사한 웃음꽃을 입가에 피울 날이 오리라. 그 웃음에 눈물짓지 않아도 될 날이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