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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Nov 14. 2023

혼자 걷는 산책길

펫로스 가벼운  그 이름(5)


혼자 걷는 산책길이 어색했다. 싫었다. 낯설었다. 허전했다. 늘 같이 오고 가던 길을 혼자 걸으려니 못할 짓이었다. 다른 길로 가기 시작한다. 그래도 집 앞은 피해 갈 수가 없다. 집으로 가려면 지나야만 하는 길이다. 한동안 집으로 가는 길 내딛는 걸음마다 많은 생각에 잠기곤 했다.


하루아침에 낯설어진 길목도 익숙한 장소에서 스치는 낯선 감정도 이사를 하고 나니 해결된 듯싶었다. 오며 가며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 괜찮은 것 같았다. 괜한 마음의 동요가 일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함께 걷던 그 길이 추억도 기억도 아닌 저 먼 어딘가에 그대로 덮여 버렸다. 그렇게 잊혔다.


녀석이 있을 때는 산책은 중요한 일과였다. 그 일과가 필요 없어지자 나는 집 밖을 나서지 않기 시작했다. 함께 걸을 발이 없어지자 나갈 이유도 없어졌다. 나를 가두기 시작했다. 나는 그대로 방 안에 갇혔다. 그렇게 지냈다.


산책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하나 있다. 백예린이 부른 <산책>이라는 곡이다. 가수 소히가 부른 노래의 리메이크곡이다. 이 노래를 들으며 많은 눈물을 쏟곤 했다. 보고 싶은 얼굴이 '물로 그린 그림'처럼 사라진다는 말이, 따뜻한 손과 감촉, '내가 쏙 들어앉아 있던 그 눈동자'라는 가사가 참 슬프다. 좋아하는 노래지만 터져 나오는 감정에 차마 더는 듣지 못했다. 산책이라는 말은 내게 슬픈 단어가 되었다.






산책을 시작했다. 나를 산책시킨다. 나와 걷는다. 어느새 산책이란 그 어떤 의미도 슬픔도 붙지 않은 이름 그대로의 산책이 되었다. 적어도 걷다가 문득 외롭지는 않은 걸 보면, 적어도 둘이 함께하던 그 모습처럼 산책 나온 익숙한 걸음들을 지나치면서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는 걸 보면, 산책이라는 말의 의미와 온도가 이제는 달라졌음을 느끼고 있다. 지나온 계절의 수만큼 나는 조금 무뎌졌다.


스마트폰도 가방도, 손에 아무것도 쥔 게 없는 산책길. 그저 홀가분하다고 느끼는 내가, 동행하는 이 없이 외롭지 않은 내가, 딴생각을 하느라 머릿속이 분주한 내가 대견하다고 해야 할지 가끔은 도통 모르겠다.


사실 나는 안다. 걸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다가도 별을 올려다보다가도 문득 울컥하다가도 그 눈물을 제법 삼킬 줄 알게 되었다는걸. 별을 보며 너를 떠올린다고 별에게 인사를 건넬 수 있게 되었다는걸. 눈물을 흘리지 않고도 기억할 수 있다는걸. 그래서 차갑지만 쌀쌀하지만은 않은 가을밤에 걷고 있다는 사실을. 두 발로 걷고 있음을. 그렇게 너와 함께 걷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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