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로스 가벼운 그 이름(7)
시험지인가? 설문지인가? 잘 모르겠지만 여러 항목이 적힌 종이다. 나는 그 종이를 받아 들고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종이에 점이 찍혀 있었다. 점 위에 가로로 짧은 선을 덧대어 그었다. 선으로 점을 덧칠하는 듯하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누군지는 모른다. 선 주변에는 글자가 있다. 어떤 내용인지 모른다. 그것을 보고 있는 내게도 내용은 중요치 않은 듯하다. 한참을 선을 긋다가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나는 내가 왜 우는지 알고 있는 듯하다. 차오른 눈물에 앞이 흐려질 무렵 잠에서 깼다. 나는 울고 있었다.
우는 꿈을 종종 꾼다. 정확히 말하자면 꿈에서 운다. 깨어 보면 현실의 나도 울고 있다. 왜 우는지는 모르겠다. 한동안 눈물이 말라서 울지 않았다는 걸 알려 주기라도 하는 것 같다. 눈물 시계가 따로 있기라도 한 걸까. 꼭 쏟아내야만 하는 울음이 나도 모르게 있었는지 오랜 시간 울지 않으면 어김없이 꿈에서 운다. 꿈에서 울기 시작한 건 매일 밤 눈물로 지새우던 날이 가뭇해질 즈음이었다. 이따금 눈물로 아침을 맞이하곤 한다.
이렇게 나를 붙잡고 글을 쓸 때가 아니라면 평소의 나는 쏟아낼 눈물이라곤 없어 보인다. 내가 봐도 메말라 보인다. 슬픈 영화나 드라마도 소설도 보지 않으니 내 눈물샘은 고요하기만 하다. 그 잔잔한 평화에 잠재의식이 시기를 느끼는 모양이다. 내가 울지 않아서 대신 울어야 된다는 위기의식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걸 모르는 현실의 나는 꿈이라는 무의식에서의 울음이 불편하기만 하다. 마치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나의 감정을 확인받는 것 같아서 불쾌해한다.
사실은 내가 외면하고 있는 일말의 감정이라는 걸 안다. 가슴 한구석에 깊게 자리하고 있는, 풀어내지 못한 응어리라는 걸 안다. 구태여 끄집어내고 싶지 않은 나를 배려하듯 꿈에서나마 눈물을 쏟는 나의 존재를 안다. 그렇게 들키고 마는 나를 안다. 눈물샘이 넘치기 전에 꿈에서라도 울어서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그러지 않았다면 나는 메말라서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의식이 나를 살린 걸까.
나는 오래도록 많은 눈물을 삼켰다. 소리 내어 울어본 적이 없다.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내일 일정이 있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밖을 나갈 수가 없어서, 오늘 밤 흘러야 할 눈물을 참곤 했다. 내가 허락하는 건 눈이 많이 붓지 않을 정도만. 딱 그만큼만 울었다. 그때 그냥 실컷 울 걸 그랬다. 후회스러웠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습지만, 당신이 눈물을 애써 참지 말았으면 좋겠다. 한바탕 울고 나면 조금은, 아주 조금은 괜찮아진다. 눈물은 삼키는 게 아니라 뱉어야 한다. 기쁘면 절로 미소 지어지는 것처럼 슬프면 눈물이 흐르는 게 당연하다. 눈물도 웃음처럼 당연하지 못해서 더 아프다.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해서 더 아프다. 당신이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다. 최소한 울지 못해서 슬프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마음껏 울어도 된다고 지난날의 나에게, 그리고 당신께 말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