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로스 가벼운 이름(8)
강아지가 세상을 떠나고 사진과 영상을 꺼내 보지 못했다. 지금도 꺼내 보지 못한다. 녀석 얼굴을 안 본 지 두 해는 지난 것 같다. 한두 번 사진을 꺼내어 봤을까? 못할 짓이었다. 그래서 꿈에서만 만났다. 지금도 차마 볼 수가 없다. 내 마음에 여전히 멍이 들어있음을 증명하는 사실이다.
사진을 메신저 프로필 화면에 걸어둔다든가, 인화한 사진을 액자에 곱게 넣어 방 안에 둔다든가 하는 그런 용기는 없었다. 차마 그럴 자신이 없었다. 다른 이들은 사진을 자주 꺼내어 보곤 한다던데, 나는 좀처럼 그러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볼 수 있지? 별이 된 강아지의 사진을 자주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신기하기도 했고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다.
나는 '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함부로 할 수 없었으니까. 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고 오랜 시간 애를 썼다.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으니까, 생각해서 무엇하겠느냐고, 그래서 생각하지 말기로 했다. 나를 지키려는 방어기제였다.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그 늪에 빠지기 싫어서 가까이도 가지 않았다.
참 미련했다. 보고 싶으면 보고 싶어 하고 그리우면 그리워하고 그래야 하는데 당연한 마음을 왜 그리 못살게 굴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마음 같았다. 그렇게 거쳐가야 할 시간을 지나오지 않고 둘러 오느라 나는 더 많이 지쳤고, 지금에서야 이렇게 글로 나를 붙들어 놓고 채근 거리고 있는 게 아닐는지.
애도 일기를 진즉 썼으면 어땠을까. 힘들겠지만 내 감정과 마주했으면 어땠을까. 내 감정에 솔직했으면 어땠을까. 보고 싶다는 말을 수백 번, 수천 번 적더라도. 할 말이 그것밖에 없더라도. 쓰고 또 썼으면, 그랬다면 지금쯤 사진도 이따금 꺼내어 보면서 추억하고 있지는 않을까. 괜한 탓을 해본다.
이게 다 이별에, 애도에, 사랑에 서툴러서 그런 거다. 이 글을 쓰면서 조금은 내 감정에 솔직해지기 시작했다. 내 마음과 마주하는 용기가 조금은 자라났다. 그래서 오늘은 뒷일은 생각지 않고 마음껏 생각해 보련다.
보고 싶다고. 아주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