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일탈을 꿈꾸지 않는다

by 유연


일을 하면서도 집안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고 싶었다.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일이 바빠지면 바쁜 대로 한가하면 한가한 대로 나는 그저 바쁜 것들에만 끌려다녔다. 나를 돌보는 일과 집안일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관심조차 없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나를 챙김이란 걸 몰랐다. 시간에 쫓겨 끼니는 거르거나 대충 때우고, 건강한 음식보다는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만 먹었다. 규칙적인 생활은커녕 밤늦게 잠들고 쉬는 날이면 피곤해서 누워 있기만 했다. 청소는 마지못해 하는 일이었고 늘 방은 어질러져 있었다. 물건을 정리할 줄 몰랐고 한쪽으로 치워 두는 게 전부였다.




그랬던 나는 지금 자신을 오롯이 돌볼 줄 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절로 움직인다. 그런 일상을 보내고 있다. 단정한 방, 깨끗한 침구, 정갈한 음식과 매일 함께한다. 이 아늑한 공간에서 나의 숨결, 나의 의식, 나의 몸을 고스란히 느끼고 받아들인다. 아, 이 얼마나 자유로운가. 부족함이 없다.


일상에서 만족을 찾지 못했을 때면 여행을 떠나고 싶어 했다. 여행이 피로와 시름을 씻겨 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일탈로서의 여행은 돌아왔을 때 후유증을 남긴다. 그것이 과연 내가 원하는 여행이었을까. 일탈이란 진정한 만족이 아니었고, 여행이란 먼 곳에 있지 않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더 이상 일상에서 벗어난 여행을 꿈꾸지 않는다. 꼭 낯선 장소로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면 그게 여행이다. 도서관 산책, 시장으로 장 보러 가는 길, 집 앞 공원을 걷는 길, 모두가 여행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매일 여행길을 걷고 있다.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뿐.




매일 같은 음식을 먹고 매일 같은 일과를 보내는 단조로운 일상은 지루한 것이 아니었다. 더 없는 평온함이었다. 일상에 만족하고 있다면 벗어나고픈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나의 일상은 행복 그 자체여서, 이제 일탈이란 그 평온의 방해꾼, 즉 불행일지 모른다.


일탈이 또 다른 모험, 새로운 자극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도 충분한데 왜 더 바라야 할까? 신선함은 오래가지 못한다. 새로운 것을 좇으면 더 새로운 것을 원하게 된다. 나는 오늘 하루에 집중한다. 삶을 영위하는 힘은 사소함에 있고, 특별함은 벗어남에 있지 않다. 나는 더 이상 일탈을 꿈꾸지 않는다.



나는 이미 내가 꿈꾸는 일상을 살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멈춰 선 곳에서 보이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