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위로

시와 에세이

by 유연





잠자리에 들기 전 책을 가볍게 펼쳤다. 생각과 달리 한 번 넘긴 책장은 쉬지 않고 넘어갔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책장도 함께 덮일까 봐 그렇게 한동안 책상 앞을 지켰다. 읽었던 책을 다시 보는 일의 묘미를 알아가려던 참이었다. 조금만 더 가면 이 단숨의 호흡도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순간 정적을 깨는 초인종 소리. 눈이 좇던 문장은 끝맺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밖이 소란했다. 늦은 밤 술에 취한 아버지의 귀가로 거실이 어수선했다. 가족을 모두 깨우는, 잠들지 못하게 한 소란이었다. 평소보다 한층 커진 목소리와 몸을 가누기 어려운 듯 어딘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음이 책을 붙들고 있던 시선을 빼앗았다. 눈앞의 활자에 집중하려고 해도 눈은 자꾸만 길을 잃었다. 마치 보지 않아도 보이는 것처럼 아직 방을 침입하지 않은 현관의 술 냄새를 맡는 듯했다.


무엇이 당신을 취하게 만들었을까. 술에 잔뜩 취하는 일은 아주 드물어졌지만, 이 밤 술에 힘을 빌려 지친 하루를 씻어낸 것을 보면, 여전히 당신의 어깨에는 무거운 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이 곧 나일까 봐 귀를 틀어 막았다. 그의 고단함을 외면했다.








<술의 위로>

한 잔의 술로 하루를 보상받는다면
그것을 뺏을 권리는 내게 없다.

기쁨과 슬픔을 술과 함께 나누고
술에 힘을 빌려 하루의 피로를 씻어 내고
술에서 위로를 찾는 이들 앞에서
나는 그 어떤 말도 보탤 수 없다.

술로 이겨내야 할 무게가
술로 떨쳐내야 할 무게가
그들을 진정 괴롭게 하는 것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어떤 위로도 참견도 닿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저 멀찍이 떨어져 서 있다.

물을 채운 빈 잔으로나마
술잔을 기울이려는 것이야말로
기만이며 섣부른 위로이기에.









술은 뭘까. 대체 무엇길래 사람을 취하게 하고 사람을 인사불성으로 만드는 걸까. 심지어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까지 끌어내리고 한 가정을 처참하게 망가뜨린다. 병이 부서지면 쉽게 땅으로 흘러 떨어지는, 뚜껑을 닫지 않으면 쉽게 증발해버리는 것에 어떻게 그런 파괴적인 힘이 있는 것인가.


흔히 술에 취했을 때 사람의 본모습이 나온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술의 힘에 의지해 자신의 본심을 보여주기도 한다. '취중 고백' 과연 그것이 진심이라고 할 수 있는가.








<취중 고백>

맨 정신으로도 꺼내기 힘든 말을
술의 기운으로 할 수 있나

그것이 진정 사랑 고백이라 할 수 있나
감정의 얼버무림에 지나지 않는 것을

그 사랑의 농도는
짙은 술의 향기에 희석되고 마는 것을






아마 이 모든 걸 따지려면 인류의 역사에서 술이란 걸 최초로 발견한 사람을 찾아가 물어보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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