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필체
한 잔의 술로 하루를 보상받는다면
그것을 뺏을 권리는 내게 없다.
기쁨과 슬픔을 술과 함께 나누고
술에 힘을 빌려 하루의 피로를 씻어 내고
술에서 위로를 찾는 이들 앞에서
나는 그 어떤 말도 보탤 수 없다.
술로 이겨내야 할 무게가
술로 떨쳐내야 할 무게가
그들을 진정 괴롭게 하는 것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어떤 위로도 참견도 닿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저 멀찍이 떨어져 서 있다.
물을 채운 빈 잔으로나마
술잔을 기울이려는 것이야말로
기만이며 섣부른 위로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