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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지야 Feb 13. 2021

할머니의 꼬깃한 지폐 한 장

보통 사람의 사적인 이야기

 할머니는 정정하셨다. 매일 노인정에 나가셨고 가끔 목욕도 다니셨다. 특별히 드시는 약도 없이 팔순을 바라보고 계셨다. 어느 날, 할머니께서 당신의 8남매를 모두 소집하셨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식사를 하시고 딸들에게 목욕을 시켜 달라고 하셨다.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가족들 모두 긴장 상태가 됐다. “병원에 가야겠다. 몸이 안 좋다.” 일요일 오후, 응급실로 들어간 할머니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셨다.






 나는 할머니와 쭉 함께 살았다. 식당 운영으로 바쁘셨던 부모님을 대신해 할머니와 밥을 먹고, 놀고, 잠을 잤다. 화투의 짝 맞추는 방법도, 저녁 10시에 하는 드라마보다 8시 30분에 하는 일일 드라마가 더 재미있다는 것도 그때 배웠다. 할머니는 내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러나 클수록 할머니의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도 늘어났다. 옛날 사람이었다. 6살 차이 나는 장손, 오빠를 더 아끼셨다. 싸움이 나도 무조건 오빠 편을 드셨고, 집안일도 모두 내게만 주셨다. 억울한 마음에 울며 대들면 오히려 아빠에게 혼이 났다. 이런 일을 몇 차례 반복한 뒤, 결국 나는 할머니의 방을 나왔다. 엄마 아빠의 비좁은 틈에서 잠을 자게 된 것이다. 이후 우리는 거의 말을 섞지 않았다. 무뚝뚝한 할머니와 사춘기 소녀 사이에 놓인 커다란 벽은 시간이 지날수록 두꺼워지기만 했다. 그렇게 어색한 상태를 유지한 채 할머니가 병원에 들어가시게 된 것이다.



 당시 대학생이던 나와 오빠가 할머니의 면회를 맡았다. 지금도 잘 이해가 안 가는 것은, 그렇게 데면데면한 사이였음에도 하루에 두 번 주어지는 면회 시간에 무척 성실히 임했다는 것이다. 가끔 친구를 만나러 가던 오빠와 달리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병원을 찾았다. 무덥던 한 여름, 면회 시간에 늦을까 온 힘을 다해 언덕길을 오르기도 했다. 살가운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이런저런 심부름을 해드렸을 뿐이다. 두 달쯤 지났을 무렵, 집으로 가려던 내 손을 할머니가 붙잡으셨다. 그리고 베개 아래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건네주셨다. 



네 고모가 준 거야. 오빠한테 말하지 말고 너 써


 그날 밤, 할머니는 이곳에서의 삶을 모두 정리하셨다. 당신의 자식들을 불러 마지막 식사를 함께하셨듯, 마치 나에게 당신의 마음을 표현할 최고의 방법을 고민하신 것 같았다. 할머니의 입관식에서야 나는 겨우 말할 수 있었다. “할머니, 사랑해줘서 고마워” 꼬깃꼬깃한 지폐 한 장에 어린 날의 응석이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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