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지야 May 28. 2021

내가 어찌할 수 있을 줄 알았던 너

왜 이렇게까지 육아가 힘들까?


나는 내가 아이일 때부터 세상 모든 아기를 좋아했다. 사촌 동생들은 물론 길가의 모르는 아이들까지도. "너희 자식들 3살까지 다 키워줄게" 하던 고등학생 때의 마음도 진심이었다. 당연히, 내 아이 하나 키우는 것쯤은 일도 아닐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육아를 시작함과 동시에 송두리째 뽑혀 나갔다. 체력 소모가 커서 일어나는 '힘듦'이 아니었다. 자유를 잃어버린 내 처지가 불쌍해 그런 것도 아니다. 대체 이유가 뭘까?

 




며칠 전, 결혼기념일을 맞이해 강원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온종일 바다만 볼 생각이었기에 웃돈을 주고 오션뷰로 예약을 했다. 끝없이 이어진 파란 바다와 햇빛에 반짝이는 물결을 보면 마음이 절로 치유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날씨 요정의 심술로 우리는 여행 내내 궂은 하늘과 뿌연 바다만 바라봐야 했다.

 


"비 계속 내릴 것 같은데, 속상하지 않아?"

남편이 물었다. 내가 바다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기에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나는 정말 괜찮았다. 아쉬운 마음은 있었지만,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받아들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 지금 내 힘겨움의 원인을 찾은 것 같아


나는 계획적인 사람이다. 일할 때도, 여행을 갈 때도, 하다못해 지인들에게 연하장을 보낼 때도 그렇다. A to Z.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대로' 움직인다. 무계획이 계획이라는 말은 내게 해당되지 않는 말이며,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자책하기까지 했다.



답은, 여기에 있었다. '계획'했던 파란 바다를 보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화가 나지도 우울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계획'했던 시간에 조식 뷔페를 가지 못한 것은 화가 났다. '내가 어쩔 수 있다고 생각했던 아이라는 변수' 당장 발코니에 나가 비눗방울 놀이를 하겠다는 아이 앞에서 내 마음속 불씨들은 다시 타올랐다.



내 버스의 운전자는 나 자신이다
내 버스 여행길에 육아가 탑승한 것
도착지까지 운전사는 '나'


책상 한편에 오랜 시간 붙어있던 메모다. 편한 대로 내용을 왜곡해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내 인생의 주도권만 가졌어야 했는데, 멋대로 아이 인생의 주도권까지 가져 오려 한 것이다. 단지 나보다 작고 미숙한 존재라는 이유로, 아이의 욕구와 감정을 제한하려 했다. 그러니 사사건건 늘 부딪힐 수밖에.



신이 인간을 하찮게 비웃는 빌미가 바로 사람의 계획이라잖아
 계획 세우지 말고 그냥 살아

  

아마도 난 꾸준히 신에게 하찮은 비웃음거리를 제공하며 살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 고달픈 육아의 원인에 '계획'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알았으니 조금 바뀌어야겠다. 내 계획대로 아이를 '어찌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 그것만으로도 내 고달픈 육아는 한 걸음 더 평온해지지 않을까.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변수가 내 앞에 나타날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조금 더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 참고도서

- 에너지 버스 │ 존 고든 지음, 유영만 · 이수경 옮김, 샘앤파커스 출판
- 그러라 그래 │ 양희은 지음, 김영사 출판 (37페이지 전유성님의 말 인용)


매거진의 이전글 그날 구급차에선 사이렌이 울리지 않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