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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지야 Jul 27. 2021

과민성 대장 증후군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2015년 여름, 우리는 한 레스토랑에 마주 앉아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야경은 아름다웠고, 종일 어딘가 불편해 보이던 남자 친구는 유독 말이 없었다. 문득 며칠 전부터 몇 번이고 그날의 일정을 확인했던 것이 떠올랐다. 급히 달력을 보았다. '무슨 기념일인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맞다. 그는 프러포즈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의 계획을 알아차리자마자 내 정신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무슨 요리를 먹었는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모르겠다. 그저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을 뿐이다.


"있잖아 우리가..."

"잠깐만, 잠깐만!!!"


 막 메인 요리가 나왔던 참이다. 나는 벌떡 일어나 차에 가서 카디건을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남자 친구를 외면한 채, 차키를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아니 나가는 척했다. 내가 달려간 곳은 화장실이었다.


 '얼마나 기다렸던 날인데!' 절망스러웠다. 그토록 기대하던 프러포즈 날, 오늘마저 예민하게 구는 대장이 얄미웠다. '눈치챘겠지? 아 이게 무슨 개망신이람'


 마침내 급한 불을 끄고 황급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물론 옷을 가지고 오지는 않았다. 남자 친구는 내게 왜 옷을 안 가져왔냐고 묻지 않았다. 뜨겁던 스테이크는 한 입 크기로 썰어진 채 차갑게 식어 있었고, 눈치 없는 나의 배만 여전히 꾸르륵 거리며 존재감을 뽐냈다.


'너 긴장한 거 알겠으니까 그만 좀 하라고!'


그토록 기대하던 나의 프러포즈 날은,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사람에게 나의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고백한 날이기도 했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
정서적 긴장이나 스트레스로 인하여 장관의 운동 및 분비 등에 기능장애를 일으키는 상태. 유일한 치료제는 그 심리적 요인을 제거하는 것.


 불안, 긴장, 걱정, 떨림과 같은 심리적 문제들은 언제나 내 대장을 자극했다. 그것은 곧 참을 수 없는 배변 장애를 일으킨다는 것을 뜻했다. 각종 시험과 면접, 발표는 물론이고 해외여행이나 낯선 사람 만나기 같은 일상의 특별함에도 예외는 없었다. 오죽하면 예식장을 고르는 기준이 분위기도, 뷔페도 아닌 '신부전용 화장실이 있는가'였으니 과민성 대장증후군이란 내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일이 분명했다.


 참고 싶어도 참을 수 없고,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 없는 일이었다. 긴장 상황이 끝날 때까지 몇 번씩 화장실을 드나들다 보니, 때로는 주변 이들의 걱정을 살 때도 있었다.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일단 병원부터 다녀와라" 심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그 부담스러운 눈빛 앞에 나는 솔직하게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떨리면 이래요~"하고 말하며.


 쿨함이 칭송받는 세상이기 때문인지 이렇게 노골적으로 내 감정을 내보인다는 것 자체가 처음에는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촌스럽고 때로는 프로답지 못하다고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누군가 내 마음을 알고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힘이 되는 일이었다.


늦어도 괜찮으니 천천히 시작하자며 윗선에 핑곗거리를 만들어 준 팀장님,

차가워진 배를 따듯하게 해주려 한 여름에 핫팩을 구하러 다닌 남자 친구,

나보다 먼저 상가에 달려가 두루마리 휴지와 화장실 열쇠를 구해 손에 쥐어준 친구들까지.    

그들의 사려 깊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는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던 긴장 덩어리를 조금씩 녹여주었다.




앞날을 걱정하면 지금에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흐트러져서 쓸데없는 에너지를 쓰게 됩니다
<유리 멘털을 위한 심리책>

                           

 

 내게는 그 쓸데없는 에너지가 바로 과민성 대장증후군이었다.

 나는 언제나 '미래'에 살았다. 나의 프레젠테이션은 완벽해야 했고, 나의 프러포즈는 감격스러워야만 했다. 그러면 지금의 나는 곧장 불안해졌다. 내 자질과 능력이 그 모습을 감히 실현하지 못할 것 같아서, 어떤 돌발 변수가 이 상황을 망쳐버릴 것 같아서 겁이 났다. 그리고 두려웠다. 마지막 순간에 가까워질수록 더 그랬다.


그렇게 연속된 질문과 생각의 고리에서 다시 '지금의 나'로 돌아올 수 있게 도와준 것이 곁에 있던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물론 그것이 내 과민한 이상 행동을 완전히 해결해 주지는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았다. 그들은 쓸데없이 빠져나가는 나의 에너지를 잠시 멈춰주었다. 그리고 미래로 향하는 그 길이 결코 혼자만의 사투가 아님을 끊임 없이 확인시켜 주었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은 여전히 번거롭고 종종거리는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끊임없이 지금의 나를 연습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지금' 내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는 것

'지금' 내 곁에 있는 이들에게 감사하는 것

그리고 '지금' 내 모습에 집중해 살아가는 것


아, 아무래도 우리는 꼬부랑 할머니가 될 때까지 떼려야 뗄 수 없는 애증의 사이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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