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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지야 Aug 02. 2021

몸치의 반격, 둠칫 둠칫 두둠칫

착각
어떤 사물이나 사실을 실제와 다르게 지각하거나 생각함


 우리는 누구나 착각에 빠진 채 살아갈 때가 있다. 공주 소리를 들으며 자라오던 막내딸이 실은 그냥 평범한 외모를 가졌다거나, 천재라고 생각했던 기타리스트가 실은 박치였다던가 하는... 나 역시 그런 착각에 빠졌던 적이 있다. 바로 '춤'이다. 연말 시상식에서 화려한 조명 아래 춤을 추는 아이돌을 보면, 거리에서 댄스 배틀을 벌이는 대학생들을 보면 내 안에 댄스 본능이 꿈틀거렸다. 나도 저 정도는 출 수 있겠는데?라고 착각하며.


 처음 춤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중학생 때였다. 축제 날, 춤을 잘 추기로 유명한 선배의 독무가 준비되어 있었다. 커다란 무대에 홀로 등장한 선배는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나비 같았다. 천여 명의 학생들은 들판을 휘두른 꽃이 되어 오직 그녀만을 바라보았다. 4분 30초. 그 짧은 시간 동안 훨훨 날아오른 나비에게서 진정한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그렇게 춤에 대한 나의 열망 또한 두둠칫, 날갯짓을 시작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고등학생에게 춤이란 미루고 또 미루어야 하는 일이었다. 고작해야 체육 시간에 배운 각종 스포츠 댄스가 전부일뿐. 나는 곧잘 A+를 받으며 더 큰 착각에 빠진 채, 날개를 펼칠 그날만을 기다렸다.


 



아니 그게 왜 안 되지?”

그러나 그 착각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바사삭, 쪼개져 버렸다. 과 대표로 치어리딩 대회에 나갈 준비를 했을 때다. 평소 선하기로 이름났던 선배는 결국 나의 몸뚱어리를 보며 버럭, 하고 말았다. 머리, 목, 어깨, 가슴 순으로 내려오는 기본 웨이브조차 죽어도 되지 않는 것이다.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답답한 것은 누구보다 나였다. 그제야 나의 수행평가 점수는 ‘성실히 안무를 외워온 대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상 속의 나는 완벽하고도 섹시한 대문자 S를 그리는데, 거울 속의 나는 그저 좀비에 감염된 인간일 뿐이었다. 


함께 춤을 배우기 시작했던 동기들이 하나 둘 내 곁으로 와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춤을 추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가장 작은 키로 가장 뒷 열에 배치된 채 주눅 들어 공연을 마친 것을 끝으로, 나는 다시는 어디에서도 춤을 추지 않았다. 친구들의 꼬임에도 절대 클럽에 가지 않았고, 어디선가 장기자랑을 시작한다는 말만 들어도 화장실에 숨기 바빴다.

 



아기 상어 뚜루루 뚜루”

억눌려 있던 댄스 본능이 깨어난 것은 뜻밖에도 “아기 상어”였다. 아이를 위해 온종일 틀어 놓은 그 단순하고도 흥겨운 멜로디는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엄마 얼굴만 보면 방긋방긋 웃던 아기 앞에서 나는 점점 더 과격해졌다. 부끄러울 일도 없었다. 아기 상어에서 엄마 상어로, 다시 아빠 상어로 노래가 흘러갈수록 나 역시 어깨에서 손으로 엉덩이로 온몸을 흔들었다. 둠칫 둠칫 두둠칫!


나의 댄스파티는 그렇게 매일 계속됐다. 콘서트장을 가득 메운 관객의 함성 대신 꺄르륵 웃어주는 아이 앞에서, 화려하게 장식된 무대 대신 장난감 자동차가 가득한 매트 위에서! 여전히 뚝딱뚝딱 움직이는 몸이지만,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로움을 느꼈다! 나를 비웃는 동료도 몸 여기저기를 만지며 한숨을 쉬는 선배도 없었다. 나는 그저 한 마리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녔을 뿐이다.




 나는 다시 착각에 빠졌다. 내가 몸치가 아니라는 착각! 이제는 꽤 남들이(아기가) 볼만한 춤(허우적거림)을 춘다는 착각! 이런 착각 한 두 스푼 더해진다고 인생이 큰일 나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안다. <아메라카 갓 탤런트>에 나갈 것도 아니고, 내가 즐겁고 아이가 즐겁다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닐까? 그리고 또 혹시 아는가. 몇십 년 뒤에는 이런 나의 허우적거림이 인정받는 세상이 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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