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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지야 Aug 05. 2021

춤추는 계란프라이처럼

보통 사람의 사적인 이야기

토요일 아침, 모처럼 야심 차게 브런치를 준비했다. 식빵 두 쪽은 토스트기에 넣어 놓고, 샐러드는 드레싱을 뿌려 접시에 예쁘게 담았다. 이제 한가운데 놓을 달걀프라이만 완성하면 끝이다! 찬장에서 묵직한 스텐 프라이팬 하나를 꺼내 들었다. 햇수로 3년째, 나와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녀석이다.


그런데 이 녀석, 참 까다롭다. 예열이 조금 부족했던 탓인지 금세 계란이 프라이팬에 착! 달라붙어 버린 것이다. 뒤지개로 요리조리 건드려봐도 소용없었다. 이번 달에만 벌써 몇 번째인지... 내 탓인걸 알면서도 괜스레 짜증이 올라 애꿎은 프라이팬만 박박 긁어댔다.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은 사용하기 번거롭고 어렵다는 이유로 사용을 주저하는 이들이 많다. 대부분의 요리에서 '예열'은 필수적인데, 알맞은 때를 찾아 조리를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용법이 꽤 익숙해졌다 생각했다가도 오늘처럼 조금만 방심했다간 프라이팬과 음식을 나눠 먹기 일수다.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는 예열 정도를 꼭 확인해 봐야 한다. 프라이팬 위에 물 몇 방울 떨어트려 보는 것이다. '취이-' 소리를 내며 그대로 증발하면 아직 더 기다려야 한다는 신호다. 예열이 잘 된 상태에서는 물방울 모양 그대로 살아 또르륵 또르륵 팬 위를 굴러다닌다. 그렇게 물방울들이 자유롭게 춤출 때, 그때가 바로 조리를 시작할 최적의 타이밍이다. 물론 방법을 안다고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알맞은 때를 기다린다는 것' 그것은 비단 프라이팬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아이는 또래보다 한참 늦은 시기에 뒤집기를 했다. 다른 아이들이 배밀이를 끝내고 기어 다니기 시작할 때야 겨우 뒤집은 것이다. 혹시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마음 졸이며 얼마나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뒤적였는지 모르겠다. 그때마다 남편에게, 친정엄마에게 하물며 동네언니에게도 같은 말을 들었다. "아이마다 다 때가 다른 거야."



물론 나 역시 알고 있다. 여름에 피는 꽃, 겨울에 피는 꽃이 제각각이듯, 아이들에게도 저마다 자신의 때가 있다는 걸 말이다. 부모는 그저 완연히 달아오를 그때를 잠자코 기다려 주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머리로 알고 있다고 해서 나의 초조함까지 잠재울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뒤집기가 끝나면 기기, 앉기, 걷기가 남아있었다. 나는 매번 뒤처지는 아이를 보며 왜 너만 아직도 못하느냐고 재촉하고 불안해했다.


그래도 아이는 자신의 속도대로 천천히 나아갔다. 아니 보란 듯이 더 늦게 발걸음을 뗀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훌쩍 지나고 보면 참 별 일 아니지만, 그때는 왜 그렇게 조급했는지. 아이가 한 계단 한 계단을 스스로 올라설 때마다 '혹시 문제 있는 거 아니야?' 하며 의심하던 지난날을 반성했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달리면서 다른 사람의 코스를 자꾸 쳐다보면 자신의 코스에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어차피 자신의 길을 가다 보면 남들의 코스와 멀어지기 마련이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코스를 완주할 생각만 하면 된다. 중간에 쉬어도 되고, 뛰어가도 되고, 천천히 걸어가도 된다. 그릇된 정보의 늪에 빠져 누군가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추는 것은 내가 내 발목을 붙잡는 행위일 뿐이다.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中 / 손 힘찬]



내가 아이의 '적당한 때'를 기다려주지 못한 데는, 내 시선에 다른 아이가 함께 보였던 것이 특히 큰 이유였다. 아이의 첫 번째 친구이자 가장 친한 친구. 그 아이는 뒤집기를 70일 만에, 걷기를 10개월 만에 했다. 무엇보다 16개월 만에 대화가 가능할 수준의 언어를 구사했으니 나뿐 아니라 모두가 놀라워할 만한 수준이었다. 하필 그 곁에 우리 아이가 있었다. 그 친구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냥 대견해 보이던 내 아이가 혼자 도태된 것처럼 보였다. 기특하기만 했던 아이의 성장 과정도 숨 막히는 레이스로 돌변해 있었다. 


만약 스테인리스 프라이팬 옆에 코팅 프라이팬을 놓고 함께 조리를 하면 어떨까? 스텐 프라이팬의 예열 시간이 유독 더 답답하고 느리게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고 제대로 예열도 하지 않은 채, 기름을 두르는 것은 곤란하다. 그랬다간 팬도, 식재료도 모두 망쳐버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프라이팬 하나도 이렇게 제각각인데 사람은 오죽하랴? 

 



근사한 브런치 대신 눌어붙은 프라이팬을 박박 문질러 닦으며 오늘의 조급함을 또 한 번 반성했다. 불만 끄지 않으면 언젠가 조리를 위한 최적의 온도에 도달할 것이다. 아이 또한 믿고 기다려 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타이밍에 스스로 먼저 다가갈 것이다. 때를 기다리자, 조급해하지 말자. 아직도 아이 앞에 남은 수많은 발달과정을 되새기며 나는 그렇게 또 다짐하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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