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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지야 Jul 20. 2021

엄마가 준 사과에서 짠 맛이 났다


 나는 '사과'를 먹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대체로 비슷한 반응이다. "아니 왜? 그 맛있는걸?" 오이, 가지, 굴을 안 먹는다는 사람들과 사뭇 다른 반응이다. 나도 알고 있다. 사과는 맛있다. 하지만 정말이지 먹고 싶지는 않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그때까지도 나는 엄마와 식탁 머리에서 '밥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어떻게든 한 수저라도 더 먹이려는 엄마와 그 마지막 한 수저에 뱃속에 들어있던 것을 다 게워내는 딸. 우리의 전쟁은 언제나 엄마의 신경질 가득한 목소리로 끝이 났다. 그날은 사과를 깎아 한 접시 가득 내어 주며 나에게 말했다. "밥 안 먹을 거면 과일이라도 많이 먹어!" 무서웠다. 정말 먹기 싫은데, 안먹을 수가 없었다. 수북이 쌓인 사과를 억지로 밀어 넣었다. 신맛이 났다. 사각거리는 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예견한 일이듯 그날 나는 단단히 체해 며을 고생했다. 약을 먹고 손을 따고 병원을 가도 소용없었다. 식도에 막혀버린 듯한 거북한 느낌에 한참을 고생했고, 이후로 사과의 사각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그렇게 나는 20년 가까이 사과와 거리를 둔 채 살아왔다.




그랬던 내게 얼마 전, 엄마의 사과를 새로 받을 일이 생겼다. 이번에는 슬픔이 가득 담긴 사과였다.


"엄마에게 이야기해서 네 마음이 풀릴 것 같으면, 어떤 이야기든 다 해" 내 표정이 평소와 사뭇 달랐던 것일까? 뜬금없는 엄마의 한 마디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사실 그때 나는 심리 상담을 받고 있던 중이었다. 지나치게 강한 인정 욕구와 아이에 대한 뜻 모를 죄책감이 스스로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상담을 통해 그 행동의 원인을 찾아가고 있었고, 마침내 그 끝에 엄마가 서 있다는 것을 막 알게 된 참이었다.


엄마에게 절대 말하지 않으려 했던 20년 전 이야기다.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부모님께서 식당을 개업하셨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손 쓸 일이 많았고, 자리를 잡느라 쉴 틈이 없었다. 당연히 부모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날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날도 줄어갔다. 엄마와 무언가 상의할 일이 생겨 전화를 걸면 '지금 바빠. 나중에' 하는 대답만 들어야 했다. 그렇게 지내길 몇 달, 마음 붙일 수 있는 상대가 하나도 없던 나는 정신적 방치 상태로 등 떠밀려야 했다. 무슨 일이든 혼자 견뎌내야 했고, 혼자 해결해야 했다. 친구들과 다퉈 홀로 점심 시간을 보내야 했을 때도, 갑작스레 진로를 변경해야 했을 때도, 선배들이 술과 담배를 권했을 때도 그랬다.


엄마와의 관계는 식당을 정리하며 다시 회복되었지만,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 성향은 이미 굳게 자리를 잡은 뒤였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엄마의 질문을 받았을 때도 아무 말 하지 않으려 했다. 이미 다 지난 일이니까. 그리고 이제는 엄마의 고단함이 먼저 보이니까. 결혼을 반대하던 외갓집에 몰래 들어가 쌀을 훔쳐 올 정도로 녹록지 않은 살림이었다 했다. 책임감이 강한 엄마는 어떻게든 가정을 일으키고자 했을 것이다. 본인의 젊음과 건강을 담보로 내어놓고선. 그렇기에 나에게 미안해 할 엄마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슴에 묻고 싶었다. 하지만 내 안에 갇혀 있던 13살의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한번 터져 나온 설움은 좀처럼 멈출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엄마가 너무 그리웠다고

엄마의 사랑이, 엄마의 시간이, 엄마의 품이 필요했다고.

그 시간을 홀로 견뎌내는 것이 너무나 버거웠고

'나중에 나중에' 하던 엄마의 목소리만 서글프게 남았다고.


엄마가 기억하는 그때의 내 모습은 언제나 '잠깐만'이었다고 한다. '잠깐만' 이야기하자고 수화기를 붙잡고 있는 딸. 그 앞에 밀려오는 손님과 배달 가방을 들고 기다리는 아빠. 엄마는 결국 '나중에 나중에'하고 하루 또 하루를 넘겨 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우리 딸 그때 얼마나 외로웠을꼬. 엄마가 정말 미안해"

그날 엄마가 준 사과에서는 짠맛이 났다. 사각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이제, 사과를 다시 먹을 준비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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