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정저수지 물넘이 둑 폭파사건
화재 등 각종 재난 현장에서 대응조직을 이끄는 소방지휘관의 능력에 따라 피해 규모는 달라질 수 있다.
2004년 8월 18일, 태풍 ‘메기’가 몰고 온 집중호우로 광주 북구 소재 ‘운정저수지’ 제방이 붕괴위기에 처했다는 출동지령이 내려졌다.
"현재, 운정저수지에서 농업기반공사와 인근 주민들이 붕괴우려 지역에서 작업중인데 날이 저물어서 조명이 필요하다고 함! 조명탑이 설치된 펌프차 출동 요청"
지휘대장이었던 양영규 소방관은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119상황실로부터 추가 정보를 확보한 뒤, 운정저수지를 향해 달려갔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을 통장이라고 밝힌 한 남성과 마주하게 된다.
"제가 여기 통장인데, 지금 제방이 곧 붕괴될 거 같어라. 어떻게든 막아볼라고 헌디… 소방이 빨리 좀 조치를 해주쇼. 정말 큰일난당께. 빨리요"
목소리에 현장의 다급함을 직감했지만, 함께 흥분할 일은 아니었다. 상황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양영규 소방관은 대원들과 현장을 둘러보며 위험요소를 확인한 뒤, 현장에 나와있던 농업기반공사(현, 한국농어촌공사) 지사장을 만나 대응 방법을 논했다.
"지금 제방 70m 중 30m가량의 둑이 3/4 정도가 유실됐습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두께가 점점 얇아지면 제방이 힘을 받지 못해 전체 제방이 동시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농경지뿐만 아니라 저수지 밑에 있는 2개 마을이 모두 침수될 수 있습니다"
억수같이 내리는 비에 이미 제방은 상당 부분이 유실된 상태였고, 농업기반공사에서 임시방편으로 하는 비닐 막 덧씌우기 작업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돼 보이지 않았다.
양영규 소방관은 뭔가 다른 방법이 없는지 농업기반공사 지사장에게 물었다.
"방법이 있긴 한데... 제방 왼쪽 물넘이 둑을 폭파해서 물이 불어 넘치는 저수량을 수로로 방류하면 되는데... 근데 이게... 아무래도 조금 위험할 수도 있고 말이죠"
위험부담이 많은 폭파작업과 자신의 결정이 득이 될지 독이 될지 확신이 없던 지사장은 말을 흐렸다. 하지만, 그 방법 외엔 딱히 해결할 방법이 없다면 빠른 결정이 필요했다.
"현재로서 그게 최선을 방법이라면 지금 당장 조치를 취하시죠. 그리고, 폭파에 관한 제반사항은 제가 추진하겠습니다"
양영규 소방관은 무전기를 들어 상황실에 군부대 폭파팀을 현장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한 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현장에 나온 관계기관에 주민 대피를 요청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강 건너 불구경하듯 그들은 양영규 소방관을 향해 불멘소리를 쏟아냈다.
"아니, 폭파를 한다고요? 굳이 폭파를 해야 됩니까? 아, 그리고 언제, 어디로 주민들까지 대피를 시킵니까?"
관계기관이라고 해서 나온 공직자의 태도에 무책임함을 느꼈지만, 감정적으로 대한다며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한 양영규 소방관은 그들을 향해 이야기했다.
"주민 대피가 번잡스러운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상황은 예측할 수 없는데... 주민들의 목숨을 두고 가능성을 따지며 회피하는 건 공직자로서 바르지 않습니다. 제 말씀을 믿고 따라주십시오."
이윽고 상황실에 긴급 무전을 날아왔다.
"여기 상황실! 지금 담양 11공수여단 폭파팀이 현장으로 출동했다고 합니다"
폭파팀이 현장에 도착하면 바로 작업이 시작될 수 있도록 마을 주민 대피가 시급했다.
"여러분! 지금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저희와 함께 빨리 주민들을 대피시켜 주십시오"
이윽고, 11공수여단의 군수참모가 8명의 폭파팀을 이끌고 현장에 도착했다.
"상황은 다 듣고 왔습니다.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한 번의 폭파는 무리입니다. 저희 폭파팀이 안전을 위해 다이너마이트를 여러 차례 나눠서 폭파하겠습니다."
비가 오는 날씨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지만, 11공수여단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물넘이 둑이 안정적으로 폭파돼 물은 수로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당초 폭파는 5번으로 예측했지만 3번의 폭파만에 완료됐다.
양영규 소방관은 11공수여단과 농업기반공사 관계자와 마주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말 다행입니다. 우리가 마을주민과 농경지를 구한 겁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벌어진 운정저수지 물넘이 둑 폭파작전은 2개 마을 주민 70명과 제방 하류에 있던 농경지 17hr를 보호할 수 있었다.
"꼭 폭파밖에 대안이 없었냐?"라는 질문에 양영규 소방관은 당시를 회상하며 "지휘팀장으로서 또 소방관으로서 선택의 순간, 그러니깐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엔 오로지 시민들의 안전을 생각하는 마음이 먼저였기 때문에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거 같다"며 "그게 바로 소방관의 소명이 아닐까 생각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