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의 마지막 날, 매몰사고 구조현장
세상에는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 소방관!
겨울 날씨라고 하기엔 유난히 화창한 2020년 1월의 마지막 날, 시샘이라도 하듯 요란한 출동벨이 119 구조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구조출동! 구조출동! 서구 마륵동 매몰 사고 발생! 근로자 매몰!”
땅을 파내고 수도관을 설치하던 중 토사가 무너져 내려 근로자 4명이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소방차에 몸을 실은 김대명 소방관의 심장은 요동쳤고, '조금만 기다려주길…' '제발 살아만 있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현장에 도착했을 땐 근로자 4명 중 2명은 큰 피해 없이 대피를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다른 한 명은 상반신만 겨우 내민 채 흙더미 속에 갇혀있었고, 다른 한 명은 그 어디에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움직일 수가 없어요. 제발… 빨리!”
간절한 외침에 다급해진 건 김대명 소방관도 마찬가지. 중장비를 이용하면 구조작업은 쉽게 이뤄지겠지만, 전날 비를 머금은 토사는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미 추가 붕괴까지 있던 녹록지 않은 현장이었다.
“팀장님, 중장비 썼다간 2차 붕괴까지 발생합니다. 직접 들어가시죠”
“그래, 삽이랑 곡괭이 챙겨서 우리가 직접 들어가자.”
결국, 현장에 도착한 관할 119안전센터 진압대원과 추가로 도착한 119특수구조대원까지… 삽으로 곡괭이로 흙더미를 파내기 시작했다. 허리를 숙인 상태로 계속된 작업은 허리가 끊어질 듯한 극심한 통증을 가져왔다.
계속된 작업으로 매몰된 첫 번째 근로자를 구조한 뒤, 이젠 모습조차 보이지 않은 두 번째 근로자를 찾기 위해 다시금 흙더미를 파 내려갔다. 무엇보다 매몰된 위치가 어딘지를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김대명 소방관은 흙더미를 향해 소리쳤다.
“119 구조대입니다. 제 목소리 들려요?”
삽을 든 두 손으로 연신 흙을 파내면서 입으로는 어디 있을지조차 모를 근로자를 찾기 위해 소리쳤다. 그때, 희미하지만 정확하게 “살려~ 살려…… 여기”라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현장에 있던 모든 소방관은 일제히 환호하며 목소리가 들리는 지점에 삽과 호미 그리고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맨손으로 흙더미를 파 내려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매몰된 근로자의 등이 보였고 서서히 뒤통수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 이상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생사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긴박한 상태. 김대명 소방관의 심장은 다시금 요동쳤다. 그리고 마침내 흙더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근로자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하지만, 눈을 감은 채 핏기 없는 얼굴과 미동 없는 몸. 두렵고 무서웠다. 하지만, 계속된 김대명 소방관의 외침에 기적처럼 근로자는 눈을 살며시 떴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모두가 숨죽이고 있는 가운데 김대명 소방관을 향해 입을 뗐다.
“아따! 만나서 반갑소잉”
“아따~ 선생님! 저도 반갑습니다잉”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서로 주고받으며 그들은 서로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살아 있음을 확인하자 다시금 힘이 샘솟았고 이내 모든 흙더미를 퍼낸 뒤 현장에 대기 중인 구급대에 인계했다. 어느새 입고 있던 방화복은 흙더미로 얼룩져 황토색 방화복이 돼 버렸다.
구조작업을 마치고 소방서로 향하는 길. 기분 탓인지 유난히 따뜻한 햇살에 힘듦보다 상쾌함이 밀려왔다. 이런 날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실 거 같아 김대명 소방관은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아! 사람 구하기 딱 좋은 날씨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이 사연을 접한 한 방송국의 주선으로 김대명 소방관과 근로자가 다시금 현장에서 만나게 됐다. 많은 이야기가 오가며 이젠 헤어질 시간, 매몰됐던 근로자는 김대명 소방관에게 말했다.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자 김대명 소방관은 대답했다.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광주 남부소방서 김대명 소방장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