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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망 Mar 05. 2023

불면증은 여독과의 싸움이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잠들지 못하는 밤



    어김없이 찾아오는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침대에 바로 누웠다. 안락한 매트리스 위에서 극세사로 짠 이불 안감의 감촉이 턱 아래로 충분히 느껴졌다. 몸의 감각기관은 마치 시체가 된 것처럼 평화로웠다. 오늘 하루에 쌓인 피로 말고는 나를 괴롭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묵직한 피로를 바디필로우처럼 끌어안고 잠을 청하면 되었다. 문제는 생각이 끊임없이 밀려온다는 것이었다. 어느새 욕구 불만에 빠진 사람처럼 이불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잠을 자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잠은 달아나 버렸다. 마침내 귀밑으로 빗소리가 들려오지 않으면 뜬눈으로 밤을 새우게 생겼다.


    고단한 몸을 매트릭스 위에 눕히자 잠에 들 준비가 얼추 끝났다. 나머지는 몸에 힘을 빼고 가수면 상태의 진입을 기다리면 되었다. 그동안 내게 못다 한 생각을 훑고 갈 잠깐의 시간이 주어졌다. 오늘도 고생이 많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여주었다. 그다음에는 내일 실행해야 할 일과 그 방법을 궁리했다. 예를 들면, 내일 회사에 입고 갈 옷을 미리 생각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방법을 연습했다. 이처럼 나는 자기 전에 내일의 일을 자주 떠올리는 편이다. 그러나 이것이 수면에 방해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일에 대한 기대를 안고 기분 좋게 잠에 들 수 있다.


    이제 꿈나라로 떠날 시간이었다. 그 밖의 근심거리는 내일의 몫으로 남기고 마음 편히 잠들면 되었다. 그런데 눈을 감아도 사라지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문제도 내일의 나에게 떠넘겨도 되는 걸까. 지금 자야 한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었다. 내일을 위해 적정량의 수면을 취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이유로 내일을 어김없이 곤경에 빠뜨릴지도 모르는 근심거리에도 모색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러자 지금 이 순간이 조금씩 다르게 느껴졌다. 내일에 있을 불행의 반복을 끊어 낼 마지막 기회였던 것이다. 만약 여기서 실수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낸다면 오늘과는 다른 내일이 펼쳐질 것이다. 수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그게 내일을 위한 일이 아닐까.


    달콤한 잠도 좋지만, 내일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지금의 결정을 분명히 후회할 것이다. 이 생각만이 다른 무엇보다 뚜렷하게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새까만 도화지 위에다가 실수를 반복하는 지난날의 나를 소환하고 자세히 들여다봤다. 여러 상황 속의 잘못된 대처법에서 공통점을 집고 올바른 대처법으로 바로잡아준다. 그다음에 교정된 방법을 내일에 있을 비슷한 상황에 대입했다. 브라보. 온몸을 가득 채우는 희열감이 내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내일부터는 다른 이들이 알던 나와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아직 적정 수면 시간까지 여유가 있었다. 그와 동시에 처음부터 이렇게 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았다. 분하고 답답한 마음에 과거와 똑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지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언젠가 오늘까지의 일을 옛말하고 사는 미래의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마음 편히 숙면을 취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뜻깊은 밤을 기억하기 위해 눈을 잠시 떴다. 시야에 포착된 것은 탁 트인 천장과 벽면의 잿빛 덩어리였고, 그것이 나를 비현실적으로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눈꺼풀을 닫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상했다. 아까의 휑뎅그렁함이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내 몸 안으로 빨려 들어온 것처럼 느껴졌다. 좀 전의 기분 좋은 상태로 잠에 들 순 없는 걸까. 생각에 중독된 건 아니었다. 단지 내일부터 달라질 내 모습을 떠올리면서 만족스럽게 잠에 들고 싶을 뿐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정신이 깨어있으면 안 됨을 직감했다. 스마트폰 화면을 볼 때마다 시간이 사십 분씩 널뛰고 있었다. 활성화된 교감신경계를 진정시키기 위해 호흡의 들숨과 날숨을 반복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뇌는 이미 과잉 각성 상태에 도달하여 그 각성 수준을 유지시키고 있었다. 자극의 공급원으로 생각을 끊임없이 발생시켰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불면증의 증상이었다. 지금이라도 잠에 들기 위해서는 생각의 파도에 휩쓸리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생각이 마약처럼 끊을 수 없는 종류의 것으로 느껴졌다. 폭주 기관차가 생각 회로 위에서 정차도 않고 빙빙 돌고 돌았다. 스스로는 불면증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생각에 점차 무력감에 빠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앞날의 상상을 되풀이했던 그때부터 멈췄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중독된 상태였다. 그래서 생각을 멈추는 게 오히려 비이성적이라고 느꼈던 것이다. 현실과는 달리 머릿속에선 만족의 생산성이 월등히 높다. 각박한 현실에선 다소의 만족을 위해 때론 많은 양의 노력을 투입한다. 반면에 머릿속에선 값싼 투입량으로 그 이상의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잠자기 전까지 사실상 무한히 솟는 정신 에너지가 그 공급원이었다. 나는 이 공급원을 가지고 ‘가능성’의 이야기를 생산해냈다. ‘가능성’의 이야기는 오늘까지와는 다른 내일의 이야기였다. 현실과 기대의 세계가 커다란 차이를 보이면 보일수록 만족도가 높았다. 그래서 나는 이 중독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상상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고 나면 세상에는 더 이상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회색 베갯잇 위에 놓인 표주박만 한 머리통 속에는 마약성 물질과 같은 것이 들어있었다. 반면에 몸의 감각기관은 마치 시체처럼 평화로워서 오감을 통한 외부 세계와는 단절된 상태였다. 이에 나는 의식을 외부 세계 속으로 던져놓지 않으면 생각을 멈출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방 안에서 심리적으로 의존될 만한 대상이 절실했던 것이다. 그때 빗소리가 생각났다. 뇌의 각성 수준과 같은 주파수대로 자극적이면서 절대 해독할 수 없는 불규칙한 리듬의 빗소리가 이 상황에 딱 맞았다. 스마트폰으로 빗소리 음성을 틀었다. 그렇게 빗소리를 들으면서 심신이 편안해지고 생각에 절여진 뇌로부터 서서히 해방될 수 있었다. 수마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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