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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셀라스

파랑새는 어디에?

by 효문

<라셀라스>는 18세기 영국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문인 '새뮤얼 존슨'의 책으로 소설적 요소를 지닌 산문이다.

1759년 라셀라스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곧 필요할 어머니의 장례비용과 채무관계를 청산하기 위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저녁 시간을 내서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집필 시간이 짧았다고 해서 담고 있는 내용이 얕은 것은 결코 아니다. 인간의 본성과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이 있는 깊이 있는 사유와 성찰을 펼치고 있다. 지극히 계몽적이지만 지루하거나 고리타분하지 않고, 삶의 철학을 담고 있지만 어렵지 않다.


부족한 하나 없는 지상 낙원과 같은 곳 ‘행복의 골짜기’에 살고 있는 아비시니아의 왕자 라셀라스는 자신을 둘러싼 행복에 의심을 품는다. 그리고 골짜기를 탈출하기로 마음먹는다. 그 여정에 세상을 두루 경험하고, 온갖 학문을 섭렵한 끝에 행복의 골짜기로 찾아온 은둔자 '이믈락'과 그의 여동생 '네카야 공주'가 함께한다. 바깥세상으로 나아간 그들은 다양한 인간 군상과 삶의 면면들을 접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라셀라스 왕자와 네카야 공주는 '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간다.



나에게 아무것도 부족한 게 없다는 것
아니 나에게 부족한 게 뭔지 모른다는 것
바로 그것이 내 불만의 원인입니다.

만약 무엇이 부족한지 내가 안다면
나에게는 뭔가 바라는 대상이 생길 것입니다.
그 바람은 나로 하여금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도록 자극할 것이고,
그러면 나는 저 태양이 서산을 향해
왜 그토록 느리게 움직여 가는지
투덜거리지 않을 것이며
날이 밝을 때 잠자는 동안 잊었던
나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다시 생각하며
비탄에 빠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새끼 염소나 어린양들이
서로 뒤쫓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나에게도 뭔가 추구하여 좇을 대상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상상에 빠지곤 한답니다.


라셀라스와 이믈락의 관계는 마치 부모와 자식 같다. 부모의 입장에서 라셀라스를 바라보면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행복의 골짜기에서 살아가면 될 텐데, 왜 굳이 그곳을 탈출해 세상으로 나아가려고 할까? 안전한 그곳에서 살아가도 충분할 텐데...'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이믈락처럼 부모는 이미 바깥세상을 다 경험해 봤기 때문에 말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믈락은 말리지 않는다. 기꺼이 그 여정에 동행한다. 그리고 라셀라스 왕자가 스스로 경험하고 깨닫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순간순간 필요한 조언을 해줄 뿐이다.


새겨듣고 싶은 말 1 - 위대한 일을 성취하는 것은 힘이 아니라 끈기입니다

'행복의 골짜기'를 탈출하기 위해서 라셀라스 왕자와 이믈락은 매일 굴을 파며 길을 만들 때, 이믈락은 이런 말을 한다.

"위대한 일을 성취하는 것은 힘이 아니라 끈기입니다. 저기 있는 궁궐을 보십시오. 돌을 하나하나 쌓아 지은 것이지만, 그 얼마나 높고 널찍한지요. 하루에 세 시간씩 열심히 걷는 사람은 칠 년이면 지구 둘레에 달하는 거리를 답파하게 될 것입니다."


새겨듣고 싶은 말 2 - 계획할 때는 어렵게만 보이던 것이 막상 실행으로 옮겨보면 쉽다.

그 과정에서 라셀라스 왕자가 일희일비하자 이런 말을 덧붙인다.

"이성적으로 타당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면 희망이나 두려움 따위로 마음을 어지럽히지 마십시오. 일이 잘 되리라는 징표에 빠져 기뻐한다면 마찬가지로 일이 잘못되리라는 조짐에 사로잡혀 두려워하기 마련인 바, 그러면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미신의 제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어떤 것으로 인해 우리의 일이 수월해지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것은 단순한 하나의 징조보다는 일의 성공에 기여하는 하나의 요인으로서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번 경우 역시 우리가 기분 좋은 결심을 실천에 옮길 때 종종 일어나는 뜻밖의 기분 좋은 현상에 가운데 하나입니다. 계획할 때는 어렵게만 보이던 것이 막상 실행으로 옮겨보면 쉬운 것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 법입니다."


새겨듣고 싶은 말 3 - 천사처럼 설교하지만 인간처럼 살아간다.

행복의 골짜기를 탈출한 일행은 수많은 인간 군상과 삶의 면면들을 접하게 된다. 누구든지 노력하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설파하는 현자를 만났을 때, 라셀라스는 곧바로 그에게 매료당한다. 그때 이믈락은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도덕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너무 성급하게 신뢰하거나 찬미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천사처럼 설교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인간처럼 살고 있기 마련입니다."

실제로 다음 날 다시 현자를 찾아갔을 때, 현자는 하나뿐인 딸을 잃고 절망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한탄합니다. "인생에 대한 나의 기대나 목표나 희망 따위는 이제 모두 끝장나 버렸소. 난 이제 세상과 모든 인연이 끊어진 외로운 존재에 불과하오.” 다른 사람에게 그런 일이 생겼을 때는 평정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던 사람이 자신에게 이런 일이 다구치가 세상이 끝난 것처럼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지독한 양면성을 보여준다.


새겨듣고 싶은 말 4 - 결과에 상관없이 덕행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다.

이집트를 피라미드를 보러 가던 날, 네카야 공주의 시녀 페쿠아는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섭다며 텐트에 남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왕자 일행이 돌아왔을 때 시녀는 아랍의 도둑들에게 납치된 후였다. 공주는 페쿠아에게 관용을 베푼 스스로를 책망하자 이믈락은 이런 말을 한다.


"불행한 일이 일어난 것은 단지 우연일 뿐 공주님의 덕행 탓이 아닙니다. 페쿠아 아가씨의 두려움을 측은히 여기신 공주님의 행동은 너그럽고 친절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주어진 본분과 의무에 맞게 행동하기만 하면 될 뿐 그 결과에 대해서는 절대자에게 맡겨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은 바로 그분의 정해 놓으신 법의 지배를 받고 있으니, 이 법에 순종하여 행동하는 한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도 벌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 한 번 생각해 보시옵소서. 공주님 만약 페쿠아 아가씨가 공주님을 따라가기를 간청했는데 공주님께서 남아 있으라고 명령하는 바람에 천막에 남아 있다가 납치되었다면, 공주님은 그 얼마나 괴로운 심경이었겠습니까? 혹은 만약 공주님께서 페쿠아 아가씨를 억지로 피라미드에 들어가게 했는데 공포로 인한 고통 때문에 아가씨가 공주님이 보는 앞에서 쓰러져 죽었다고 한다면, 역시 공주님께서는 그 얼마나 견딜 수 없어하셨겠습니까? (…) 덕행을 실천했을 때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주어지는 보상 가운데 최소한 이것만은 말씀드릴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어떤 불행한 결과가 발생하든지 간에 우리가 행한 그 덕행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으리라는 점입니다."


새겨듣고 싶은 말 5 - 날이 어두워졌다고 눈을 빼버리려고 하지 마라.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인다.

"슬픔의 먹구름이 몰려와 우리 머리 위를 뒤덮을 때, 우리는 그 먹구름 너머로 아무것도 보지 못하며 그 먹구름이 영원히 걷히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하곤 하지요. 하지만 어두운 밤에 뒤이어 밝은 새날이 반드시 찾아오는 것처럼, 슬픔의 암흑이 아무리 길어도 회복과 위안의 새벽빛은 틀림없이 밝아오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위한을 받을 수 없도록 스스로를 차단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날이 어두워졌다고 해서 자신들의 눈을 빼버리려 했던 태초의 미개인들과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는 셈입니다."


행복하고 싶다면
능력을 키우거나 욕망을 줄이거나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충분히 행복한 사람은 많지 않다. 왜일까? 물음에 대해 이 책의 작품 해설에서는 완벽한 답을 하고 있다

라셀라스에서 우리가 확인하고 깨닫는 또 다른 삶의 이치는 이것이다. 행복의 달성이 불가능한 것은 곧 우리의 능력이 우리의 욕망만큼 따라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라셀라스에서 이것은 이상과 현실의 문제, 이론과 실천의 괴리에 대한 성찰을 통해 극명하게 일깨워진다.
- 작품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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