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은 짐이 아니다

엄마가 전해주는 삶의 지혜 3

by 효문


20여 년 전 0시 14분, 나는 엄마가 되었다. 3.26kg의 무게로 찾아온 딸은 순하고 무던했다. 잘 먹고 잘 잤다. 무럭무럭 자르며 하루가 다르게 몸무게도 늘려갔다. 그리고 돌이 지난 어느 날, 아기 띠를 매고 외출했을 때 내가 책임져야 할 삶의 무게를 실감했다. 절대 내려놓을 수도 없고 내려놓고 싶지도 않은 너무나 행복한,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막중한 무게였다.


누구에게나 내려놓을 수 없는 짐이 있기 마련이다.


빈 배가 바다로 나아갈 때는 '바닥짐(밸러스트)'을 채운다. 아무것도 싣지 않은 상태로 나아가면 훨씬 빠르고 수월하게 운항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파도가 몰아쳤을 때 빈 배는 무게중심을 잡기 어려워 위험하다. 그래서 배의 밑바닥이나 양옆에 설치한 탱크에 바닷물을 채워 무게중심을 잡는다. 산을 오를 때도 마찬가지다. 빈 몸으로 산을 오르면 중심 잡기 어려워 적당한 무게의 배낭을 메고 오르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한다.


바닷길과 산길에서처럼 삶의 길에서도 무게가 필요하다. 그 무게가 가족일 수도 있고, 박지성 선수처럼 평발일 수도 있다.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그 짐은 내려놓고 싶어도 내려놓을 수 없거나 내려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때때로 너무 힘들어서 울고 싶고 소리 지르고 싶지만, 짐을 안고 묵묵히 나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짐이 무겁고 괴롭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짐으로 인해 유혹을 이기게 되고, 포기하지 않게 되고, 더 많이 사랑하고 이해하게 되고, 짐으로 인해 더 크고 강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옛날 우리 할머니들은 쌀자루를 머리에 이고 험한 산길을 올라가 부처님에 공양을 올렸다고 한다. 잠시 바위에 앉아 쉴 때도 할머니들은 쌀자루를 바닥에 내려놓지 않았다. 부처님께 공양 올릴 귀한 쌀이기에 가슴 아래로 내릴 수 없다고, 품에 앉은 채 혹은 머리에 인채 잠시 쉬었다가 다시 산길을 올랐다. 내려놓을 수 없었던 것은 쌀이 아니라 부처님에 대한 경외의 마음이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절대 내려놓을 수 없는 그 마음이 있었기에 팍팍하고 고단한 세상살이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산스크리트어로 인간은 '푸루샤'라고 한다. '힘을 소유한 존재'라는 뜻이다. 힘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고정 불변은 아니다. 무게를 견디는 만큼 힘은 강해진다. 시련이나 난관이라는 모습으로 혹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온 무게를 감당하면서 힘을 키우고 그 힘으로 삶을 창조해 가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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