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와 갱년기의 격돌 1
"우리 강아지 같으면 열 명도 키우겠다."
성정이 무던한 손녀를 두고 할머니는 종종 이런 말을 했다. 할머니의 강아지는 잠투정하는 법도 없었고, 자고 일어나면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방실방실 웃음꽃을 피워서 할머니를 행복하게 했다. '예쁘다'라고 한 번 안아보자고 낯선 사람이 팔을 내밀면 넙죽넙죽 잘도 가서 안겼고, 입이 까다롭지 않아 주는 대로 잘 먹었다. 이때까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사람에게 지랄총량의 법칙이 있다는 것을.
어느 날 갑자기 딸에게 사춘기가 찾아왔다. 엄마와 딸 사이에 충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가장 먼저 찾아온 갈등은 영역 싸움이었다. 딸의 방은 늘 정신이 없었다. 뒤집어 벗어서 던져놓은 옷들이 여기저기 널 부러져 있고, 화장품을 사용하고 뚜껑 닫는 일이 뭐 그리 힘이 드는지 노상 열려있었다. 물과 주스를 마신 컵은 몇 개씩 책상 위에 놓여 있고, 휴지통은 꽉 차서 터질 지경이었다.
"정신 사나워. 제발 정리 좀 해"
참다못해 잔소리를 하면 딸은 아주 쿨하게 한마디 한다.
"그냥 보지 마"
"보이는 데 어떻게 안 봐"
"그럼 방문을 닫아."
그렇게 1차전을 끝내고 딸이 학교에 가고 나면 혼자 구시렁거리며 정리를 했고, 집으로 돌아온 딸과 2차전을 펼쳤다.
"아 좀 그냥 내버려 두라고. 엄마 때문에 뭐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잖아"
"청소를 해줬으면 고마워해야지, 왜 짜증을 내고 그래"
그렇게 며칠에 한 번씩 지치도 않고 다투던 어느 날, 미드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드라마 속의 형사는 정리정돈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책상이 그야말로 쓰레기통이었다. 온갖 자료와 먹다 남은 음식과 음식을 쌌던 포장지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그런데 동료와 상사 그 누구도 그의 책상을 놓고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그 책상은 오롯이 그의 영역이라는 것을 모두가 인정하고 존중하고 있었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나는 딸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었다는 것을. 만약 시어머니가 와서 냉장고를 정리하고 집안을 청소해 주면 좋아할 며느리가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장담하건대 거의 없을 것이다. 내 영역을 침범당하고 좋아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방 꼬락서니가 정신 사납다는 이유로 내 기준에 맞춰 깔끔하게 정리 정돈해주는 것, 그것은 친절이 아니라 영역 침범이었고 내 생활방식이 옳다는 강요였다. 딸의 방은 딸의 영역이다. 그곳에 엄마가 자신의 깃발을 꽂으려고 하는 것은 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