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 쳐주는 사람
집 근처에 있는 생긴, 아니 이제야 발견한 무인 카페를 요즘 즐겨 찾는다. 열대야를 이기기 힘든 저녁에 혹은 집에서 집중이 안 될 때 커피 한 잔 옆에 두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에 좋은 곳이다. 기계가 커피를 만들어 주기를 기다리며 실내를 둘러보는데, 한쪽 벽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메모지가 눈에 들어왔다. 응원의 글들이었다. 무인 카페이니 주인장 얼굴을 본 적도 없을 텐데, 많은 사람들이 생명부지의 타인을 향해 '이런 공간을 만들어준 것에 감사하고 앞으로 잘 되기를 바라는 응원의 마음'을 담아 정성스럽게 메모지를 써붙였다. '세상에는 이렇게 예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여전히 많구나' 가슴이 따뜻해졌다.
응원의 힘은 대단하다. 2002년 전국 곳곳을 붉게 물들였던 응원의 물결이 4강 신화를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실제로 관중의 함성은 선수들의 도파민 분비를 촉진시켜서 피로를 덜 느끼게 하고, '반드시 이기고야 말겠다'는 동기를 부여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즉 응원의 열기가 높을수록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1889년 미네소타 대학생 쟈니 켐벨이 '힘내라 힘내라! 그래 힘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최초의 응원을 했다고 한다. 그 후 응원 문화는 스포츠와 함께 꾸준히 발전해 왔고, 이제는 경기장의 꽃이 되다시피 했다. 건네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가 즐겁고 신나는 것이 응원이다.
오래전, 중학교 졸업식 때였다. 공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깨발랄 친구는 졸업식장에서 수다를 멈추지 않았고, 결국 선생님에게 한 마디 듣고 말았다. '졸업식날 상장도 하나 못 받는 주제에 뭐가 그렇게 신이 났느냐'라고 말이다. 그런데 친구는 기죽지 않았다. "상 받는 친구들에게 신나게 박수 쳐줄 수 있잖아요. 다들 상을 받으면 박수는 누가 쳐줘요?" '누군가를 위해 응원해 주는 것이 내가 상 받는 것만큼이나 소중하다'는 친구의 생각이 참 예뻤다. 그 나이에 어떻게 그렇게 기특한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지금 돌이켜봐도 대견하다. 세월이 흘러 그 친구와 연락이 끊어진 지는 이미 오래지만, 아마 지금도 어디에선가 그렇게 예쁜 마음으로 누군가를 응원해 주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이 늘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응원 대신 호통이 날아드는 경우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며칠 전 밤산책을 나갔다가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들과 함께 산책을 나온 아빠를 만났다. 아빠는 아들에게 피곤을 호소했지만, 아들은 아빠의 피곤을 이해하기에 너무 어려 보였다. 그 또래의 사내아이들이 다 그렇듯이 아이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축구장 그물에 붙은 곤충에 한 눈을 팔았다가 산책로로 기어 나온 지렁이에 한 눈을 팔기도 했고, 한쪽에 설치돼 있는 운동기구를 향해 달려가다가 넘어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빠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얌전히 좀 걸어. 넌 오늘 하루 종일 먹고 자고 밖에 안 했지만, 난 하루 종일 일해서 피곤하단 말이야." 아이의 넘치는 체력과 호기심을 응원해 주기에 아빠는 너무 피곤했던 모양이다.
사람은 누구나 응원을 필요로 한다.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아이에게도 응원이 필요하고, 부모가 처음이라 매일 전쟁을 치르는 초보 부모에게도 응원이 필요하고,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 경단녀에게도 응원이 필요하고, 또 무더운 여름에도 꿋꿋하게 출근하고 등교하는 이들에게도 응원이 필요하다. 아낌없이 서로를 응원하면서 살자. 어깨를 다독여주거나 껴안아 줘도 좋다. 맛있는 밥을 한 끼를 사주거나 그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어도 좋다. 혹은 반짝이는 호기심과 아이디어를 칭찬해 주어도 좋고, "힘내! 넌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믿어"라고 메시지를 보내줘도 좋겠지. 진심 어린 응원은 받는다면 웬만해서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즐겁게 하고, 아무리 큰 어려움이 찾아와도 끝내 절망을 이기고 다시 일어서게 할 것이다. 응원이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