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이 없는 날, 그런 날은 없다. 단지 '오늘 해야 할 일'을 나중으로 미룬 채 게으름 피우거나 엉뚱한 일을 하는 날이 뿐이다. 그 옛날 시험을 앞두고 있으면 꼭 방청소나 책상 정리가 하고 싶었던 것처럼, 지금은 마감해야 할 일을 앞두고 있으면 냉장고나 컴퓨터 정리가 하고 싶어 진다. 격렬하게 한 눈 팔고 싶은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 사진을 정리하다가 재미있는 사진을 발견했다. 오래전 이집트 여행을 갔을 때 담배가게의 글귀가 재미있어서 찍어둔 사진이다. Smoke now..... Work later. 사장님이 딱 싫어할 글귀다. 픽 웃으며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지금 해야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해야 할까?
일의 순서를 정할 때 흔히 '시급성과 중요성'을 따져보라고 한다. 이를 기준으로 일을 나누면, 크게 4가지로 분류된다. 급하고 중요한 일, 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 중요하지만 급하지는 않은 일, 중요하지도 급하지도 않은 일. 이 가운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단연 '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지금 나에게 가장 급하고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최근에 한 동료가 이런 질문을 했다. "몇 살까지 일할 생각이세요?" 쉽게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인생 후반기,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수년 전부터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일임에 분명하지만 급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생각하기를 미룬 탓에 아직 답을 찾지 못했고, 어느새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급하고 중요한 일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일을 미루고 있다.
깊은 사유는 의외로 힘들기 때문이다. 일단 주위 사람이 방해하고, 스마트폰이 방해한다. 외부적 요인을 차단하더라도 내부적 요인이 기다린다. '인생 후반기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중요한 생각 중에 '저녁에 뭐 먹지? 재활용 쓰레기 내놔야 하는데' 같은 엉뚱한 생각이 불쑥 끼어든다. 그 생각이 끼어드는 순간 몸은 시장 보러 갈 준비를 하거나 재활용 쓰레기를 챙기게 되고, 처음의 고민은 잊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또 흐지부지 시간을 보내다가 '필요한 자료부터 찾아보자'며 컴퓨터 앞에 앉지만, 정신 차리고 보면 전혀 엉뚱한 쇼핑몰에 가 있거나 SNS에서 좋아요를 누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빌 게이츠에 일 년에 두 번 '생각 주간'을 가지는 것은 이런 상황을 원천 차단하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누구의 방문도 허락하지 않고 오직 혼자서 수십 권의 책을 읽고, 논문을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일주일의 시간. 그 시간은 그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했던가. 삶에 이끌려 가다가 '내가 원한 삶은 이것이 아니었다'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즉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것은 '생각 주간'을 갖는 것이다. 아,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