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유혹에 넘어가자
세상에는 유혹이 너무 많다. 다이어트해야 하는데 치맥이 유혹하고, 책 읽어야 하는데 넷플릭스가 유혹하고, 운동해야 하는데 친구가 같이 놀자고 유혹한다. 일해야 하는데 심지어 바람과 하늘이 유혹한다.
어제저녁, 일은 해야 하는데 도무지 집중이 되질 않았다. 10분에 한 번씩 스마트폰에 한 눈 팔다가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이 노을로 물들고 있었다. "나 이렇게 예쁜데, 그래도 안 나올 거야?" 하늘이 유혹하고 있었다. '노을로 물든 하늘을 보며 한강을 좀 걷고 나면 일도 잘 될 거야' 핑계를 대며 사무실을 나섰다.
그런데 마포역 근처에서 한강으로 나가는 길이 공사 중이었다. 입구가 막혀 있었다. '들어가서 일이나 하라는 하늘의 뜻인가?' 괜히 양심에 찔려 다시 사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그 순간, 생각이 났다. 마포대교 위로 갈 수 있는 보행로가 있다는 것이.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옆에 서 있던 두 여성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왠지 금요일 저녁 같은 느낌이지." "그러게. 내일 토요일인 줄 알고 출근 안 하는 거냐?"
그랬다. 노을로 물든 하늘과 선선한 바람은 목요일을 금요일로, 일상의 공간을 여행지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기분 좋은 착각을 하며 타박타박 마포대교를 걷는데,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하늘은 노을로 물든 쪽이 아니라 반대쪽이었다. '우주쇼라도 있는 건가?' 검색을 해보니 '슈퍼 블루문'이 뜨는 날이었다.
'수퍼문'은 달이 지구에 가장 가까운 지점인 근지점에 위치할 때 뜨는 보름달로,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보름달인 미니문에 비해 14% 더 크고, 30% 더 밝다고 한다. '블루문'은 한 달에 두 번 보름달이 뜰 때 나중에 뜨는 달을 의미한다. 수퍼문과 블루문이 일치한 것이 '수퍼 블루문'이다. 오늘 놓치면 14년 후 2037년 1월 31일에나 볼 수 있다는 기사를 보는 순간, 뭔가 횡재한 느낌이었다. 무심코 가게에 들어갔는데 100번째 손님이라며 이벤트에 당첨된 기분. 너구리를 끓이려고 봉지를 뜯었는데 다시마가 2개 나온 기분. 식당에서 점심 먹다가 선배를 만났는데 선배가 밥값을 대신 내준 기분.
산책을 멈추고 수퍼블루문을 기다리기로 했다. 벤치에 앉아 붉은 노을과 어둠이 힘겨루기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옆에서 와~ 하는 감탄사가 들려왔다. 수퍼블루문의 등장이었다. 달은 해처럼 서서히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훨씬 빨리 둥근 자태를 드러냈다.
혼자 보기 너무 아까워 가족과 친구들 단톡방에 올려 같이 즐겼다. (브런치에도 어제 올리고 싶었지만 밀린 일을 하느라 이제야 올린다.) 불과 30분 전까지만 해도 일에 집중이 안 돼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기분이 바뀌었다.
우리 일상의 대부분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 있지만, 가끔은 이렇게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물론 예상밖의 일이 반드시 좋은 일이라는 보장은 없다.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지만, 때로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것이 인생이니 말이다. 친구가 그랬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안 담글 수야 없지 않겠는가. 가끔은 일탈도 해보고, 유혹에도 넘어가 보자. 횡재하면 좋고, 아니어도 최소한 기분전환은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