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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문 Sep 14. 2023

소매를 고쳐주는 소매상(?)

소통 불능의 시대

텔레비전을 보다 말고 혹은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다 말고 '단어'를 검색할 때가 종종 있다. 완내스, 갤박, 캘박, 중꺽마, 머선 129...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신조어들 때문이다. 청소년들 입장에서 보면 '문해력 떨어지는 어른'이다.


반대로 어른들 입장에서 보자면 '청소년들의 문해력'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며칠 전, 지하철역에서 나와 아파트 단지로 올라갈 때였다. 앞에  두 여학생이 걷고 있었다. 뒷모습만 봐서는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알 수 없었지만, 여느 10대 소녀들처럼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었다. 그들 역시 아파트로 가는 모양이었다. 본의 아니게 그들을 따라 걸으며, 본의 아니게 그들의 재잘거림을 엿들었다. 그런데 이런 문구가 붙어 있는 가게 앞을 지날 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소매가 뭐야?"

"뭐?"

"소매가 뭐냐고?"

"진짜 몰라서 물어?"

"어. 소매를 고쳐주는 곳인가?"

"소매, 도매 몰라?"

"소매는 뭐고, 도매는 뭔데?"

"작게 조금씩 파는 거 소매"

"그럼 도매는?"


자신 있게 설명하던 소녀의 목소리에서 갑자기 자신감이 사라졌다.


"어... 큰 도는 아니고 도매가 뭐지..."


소매와 도매라는 단어조차도 청소년들에게는 어려운 단어라는 것이 놀라웠다. 도매는 '도읍 도(都)'를 쓴다. "왜 큰 대를 써서 '대매'라고 하지 않고 매라고 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소매라는 말을 잘못 이해한 데서 생겨난 오해이다. 소매는 조금씩 판다고 해서 소매가 아니다. 소매(小賣)는 '물건을 생산자나 도매상에게서 사들여 직접 소비자에게 파는 것'을 의미한다. 비슷한 말로 '산매(散賣)'가 있다. 반면 도매(都賣)는 '물건을 낱개로 팔지 않고 모개 즉 묶음으로 파는 것'을 의미한다. 설명하다 보니 한자를 배우지 않은 청소년 세대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일 수도 있겠다 싶다.


'사흘, 심심한 사과, 십분 이해하다, 고지식하다, 무운을 빌다' 등등의 단어에서 비롯된 문해력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 10명 가운데 8명은 '평소 문장을 읽고 뜻을 이해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라고 자평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해력으로 인한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데, 문장을 읽고 뜻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다니...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여러 가지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책이나 신문 등 문자로 된 것을 많이 읽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단어에 대한 자각력이 떨어질 것이다. 영상에서는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찰나 간에 지나가기 때문에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조차 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는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 Kruger effect)도 있을 것이다. 더닝 크루거 효과는 잘못된 판단을 하는 인지편향 가운데, 하나로 자신의 지식이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하고 과대 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평균보다 운전을 잘하고, 평균보다 질서를 잘 지키고, 평균보다 이해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모른다는 것을 모르면 또 자신의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성장의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단순히 단어 몇 개 모르는 것으로 끝나는 아니라 자기 성장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알쓸별잡에서 김상욱 교수는 "문자를 썼기 때문에 인류가 논리적 사고를 하게 됐고, 세상을 보는 틀을 완전히 바꿨다."라고 했다. 문자에서 멀어지면서 '논리적 사고'도 어려워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덧붙여서 세대 간의 간극이 커질 가능성도 높다.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가 서로의 언어를 알지 못하니 통하지 않고, 통하지 않으니 갈등과 오해의 골이 깊어진다.


알아야 이해하고, 이해해야 사랑할 수 있다고 했다. 단어를 알고 이해하는 것은 '사람과 세상을 보는 눈을 밝게 만드는 것'이고,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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