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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문 Sep 16. 2023

붕어싸만코가 가져다준 휴식

발걸음이 무거울 때는 쉬자

우리 삶에 생기는 문제와 그에 대처하는 방식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앞으로 생길 미리 예상하고 준비하기. 문제가 발생한 직후에 재빠르게 대처하기. 뒤늦게 알고 부랴부랴 수습하기'  발견이 늦을수록 대처는 어려워진다.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고 문제가 심각하게 악화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제는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웠다. 한숨을 실어 발걸음을 옮기는데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눈에 들어왔다. 점심식사 후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골라 먹는 즐거움에 대해서 쓴 어느 브런치 작가의 글이 생각나 불쑥 가게로 들어갔다. 처음 들어가 본 무인 할인점에서 붕어 싸만코를 사들고 나와 어두운 밤길을 바라보며 먹기 시작했다. 하나를 다 먹고, 다시 가게로 들어가 또 하나를 사가지고 나왔다.


한 마리는 꼬리부터

또 한 마리는 머리부터


붕어싸만코를 두 개를 다 먹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내가 지쳐있었었구나'



일이 몰리면서 한 달 남짓 강행군을 한 탓에 꽤 지쳐있었나 보다. 사람은 의외로 자신의 감정이나 몸상태에 대해서 잘 모른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참는 것에 익숙해지기도 하고, 당장 해야 할 일에 쫓기면 시야가 경주마처럼 좁아지기 때문이다.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아주 큰 잘못이 아닌 이상, 웬만한 것은 용서가 된다. 물론 싫은 소리야 듣겠지만, 야단을 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나면 실수가 쉽게 용납되지 않는다. 자연히 일을 대하는 자세는 엄격해질 수밖에 없고, 스스로를 갈아 넣는 것으로 그 엄격함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신에게 소홀해지고, 지쳐도 지친 줄 모른 채 일에 매달리게 된다.  

   

언젠가 만났던 한 기자가 이런 말을 했다. 수준 높은 무료 공연들이 의외로 많이 있지만, 경제력이 없는 사람들은 그런 공연마저 관람하지 못한다고.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돈이 없지, 낭만이 없고 여유가 없는 게 아니잖아'라고 말할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돈이 없으면 낭만이나 여유를 갖기 힘들다. 시간이 없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가져야 하는 것이 '여유'이다. 여유를 가져야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서 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뒤도 돌아보고 옆도 살펴볼 수 있다. 바쁜 와중에 마시는 차 한 잔의 여유가 숨통을 틔워주듯이, 늦은 저녁 '달콤한 붕어싸만코 삼매경'에 빠진 그 잠깐의 시간이 피로회복제 역할을 충분히 해주었다. 그리고 다시금 뇌리에 각인시켰다. 발걸음이 무거울 때는 잠깐 쉬었다 가자고. 쉬었다 가도 괜찮다고. 아니 쉬어야만 괜찮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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