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을 걸으며 사랑을 생각하다
어제 늦은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섰다.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산책을 못할 정도는 아니어서 우중산책을 즐겨보기로 했다. 날씨를 핑계 삼지 않으려는 노력이고, 비 오는 날의 산책에는 맑은 날의 산책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혼자 산책로를 독점할 수 있다. 간혹 우산을 쓰고 나온 사람을 만날 때도 있지만 한두 바퀴 돌다 보면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그리고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혼자서 자박자박 걷다 보면 회중시계를 가진 토끼를 따라 굴 속으로 들어선 엘리스가 된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뭔가 일상에서 한 걸음 물러선 것 같은 기분이랄까. 이때를 놓칠세라 머릿속에선 온갖 생각들이 자유롭게 넘실거리고 번뜩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어제는 토독토도독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기억 저편에 있던 시를 한 편 끄집어 올렸다.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 베르톨트 브레히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맞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게 하는 것이고, 떨어지는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두려움을 모르면 사람은 오만해지고 경거망동하여 위험을 불러오게 된다. 배를 타는 사람은 파도를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하고 지도자는 백성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용감한 사람이 아니라 위험한 사람이고 어리석은 사람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스스로 방만해지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자신을 지키고 가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