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늙어간다는 것
함께 늙어간다는 것을 어떤 것일까? 스무 살도 안 된 어린 나이에 부부의 인연을 맺고 60여 년을 함께 살아온 두 사람은 4분의 부모님을 같이 떠나보내고, 5명의 아이를 낳아 키우고 공부시키고 결혼시키고, 다시 10명의 손자가 태어나서 사춘기를 겪고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가고 취직하는 것을 지켜봤다. 이제 80대 중반의 나이에 들어선 두 사람의 몸은 자주 아프고, 여전히 삶의 바람 잘 날 없지만 두 분의 하루하루는 때때로 코믹하고 때때로 뭉클하다.
내가 유일하게 하는 효도는 부모님을 모시고 종종 여행을 가는 것이다. 얼마 전, 울산으로 며칠간 여행을 다녀왔다. 간식거리도 살 겸 잠시 마트에 다녀오겠다고 하자, 엄마가 칫솔 하나만 사다 달라며 만담의 장을 펼쳤다.
"너그 아부지가 달랑 자기 칫솔만 챙기왔다"
"당신 칫솔 챙기라는 말은 안 했다 아이가"
"아이고, 당신 칫솔 챙기믄서 옆에 있는 내 칫솔을 안 보이던가요? 내는 60년이 넘도록 집에서 나갈 때마다 지갑 챙겨줘, 옷 챙겨줘, 자동차 열쇠 챙겨줘. 다 챙겨줬구먼."
칫솔 하나 안 챙긴 죄로 순식간에 60년 결혼 생활이 소환당한다.
"그라믄, 당신 것도 챙기라고 말을 하던가?"
이미 승리는 엄마 쪽으로 기울었지만, 아버지가 기어이 한마디 덧붙인다. 만담이 길어질 조짐이다. 이럴 때는 빠른 정리가 최선이다.
"엄마가 잘못했네. 말을 정확하게 해야지. 칫솔 사 올게요."
나가려는데 천둥소리처럼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의 전화 통화가 끝나자마자 물었다.
"왜 이렇게 벨 소리를 크게 해 뒀어요?"
"지난번에 보건소 직원이 나왔을 때 전화벨 소리가 작다고 좀 키아달라 캤더이만 이래 놨다 아이가. 노인대학 가 있을 때 전화 오믄 놀래서 시껍한다. 벨소리 좀 다른 걸로 바까 놔라"
수많은 벨 소리를 하나하나 확인해 가며 엄마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고, 음량도 적당하게 조절했다. 그런데 곧바로 아버지의 저항에 부딪혔다.
"그 소리 안 된다. 안 들린다."
고령이신 데다가 고막을 다쳐 청력이 좋지 않은 아버지 귀에는 벨소리가 선명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당신 전화기도 아니고, 내 낀데 당신이 와 안된다 카는교?"
"내도 들어야지"
"음마, 벨소리 들으면 뭐하는교? 내 스마트폰으로 전화오믄 받을 줄도 모름서."
여전히 폴더폰을 사용하는 아버지는 스마트폰 사용법을 1도 모른다. 받을 줄도 모르는 전화기, 소리는 들어서 뭐 하는 엄마의 핀잔에 아버지는 바로 깨갱이다. 2대 0. 아버지의 연전연패다.
다음 날,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해 소고기 국밥집에 갔다. 만 원짜리 국밥은 몹시도 푸짐했다. 고기도 부드럽고 맛있었다. 식사를 시작하고 잠시 후 엄마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당신, 한 숟가락 더 드실라요?"
"됐다."
"내 너무 많다."
"내도 많다."
"한 숟가락만 더 드시소"
아버지의 의사는 깔끔하게 무시당했다. 1차 방어 실패다.
"당신 먹던 거, 먹기 싫다."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2차 방어를 시도해 본다.
"이 쪽은 내 손 안 댔다."
국밥인데 '이쪽만 먹고 저쪽은 아직 손 안 댔다'는 엄마의 억지 주장에 아버지가 결국 한 숟가락의 밥을 건네받았다. 그런데 엄마의 숟가락질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 숟가락만 더 묵으람서?"
"한 숟가락 주면 정 없다"
결국 세 숟가락을 넘겨주고서야 이 날의 만남은 끝이 났다. 나는 모른다. 엄마 아버지가 정말 배가 불렀는지, 아니면 먹어보니 국밥이 너무 맛이 있어서 엄마는 아버지에게 기어이 한 숟가락 더 주려고 하고, 아버지는 엄마 몫을 받지 않으려고 했는지. 부부의 마음, 부부만이 알뿐이다.
늙음은 서글프고 힘들지만, 누군가와 같이 늙어갈 수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하다. 친구는 결혼한 지 20년이 넘도록 남편과 방귀를 트지 못했다고 하지만, 내 가장 초라한 모습을 부끄럽 없이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배우자 밖에 없을 것이다. 자식에게도 보일 수 없는 모습을 유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같이 늙어가는 배우자뿐이다. 긴긴 세월 함께 살아오며 같이 웃고, 같이 아파하고, 같이 견디며 둘이되 하나가 되는 '연리지'가 되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