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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문 Nov 12. 2023

보이스피싱 문자를 받았습니다

자녀의 단짝친구 연락처는 알아두자

며칠 전 한 통의 문자메시를 받았다.

엄마 나야~ 폰 고장 나서 통화 안돼... 임시폰으로 문자 중이니 이 번호로 답줘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딸이 보낸 문자라고 생각하고 답을 했다. 무슨 일 있냐고. 괜찮냐고. 그리고 덧붙였다. 보험가입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내 문자가 오히려 미끼가 된 것이었을까? 다시 이런 답이 왔다. 

지금 온라인으로 폰 보험금 신청 중인데 내 폰 인증이 안 돼서 그러는데 엄마 명의로 먼저 신청해도 될까?

문자메시지로 주고받기 답답해서 전화를 했다. 연결이 안 됐다. 다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어디냐고. 왜 전화는 안 받느냐고. 그러자 이런 답이 왔다. 

이거 임시 받은 피씨용이라 통화가 안 돼. 문자만 가능해. 
지금 온라인으로 보험금 신청 중인데 내 명으로 안 돼서 그래. 엄마가 좀 도와줘. 
엄마 환불받을 계좌번호하고 신분증 사진 전체가 잘 나오게 찍어서 이 번호로 보내줘. 신청해 볼게.

이때서야 뭔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딸은 질문과 답이 어긋나는 것을 몹시도 싫어한다. 어디냐고 물었으니 분명 소재부터 먼저 밝혔을 것이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보이스피싱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딸에게 카톡을 보냈다. 1이 없어지지 않았다. 딸과 통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딸의 단짝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같이 있으면 엄마에게 전화하라고 전해달라고. 그리고 잠시 후 딸에게 카톡이 왔다. 수업 중이라고. 다행히 신분증이나 개인정보를 보내기 전에 딸과 연락이 됐지만, 황당하게도 나는 그때까지도 미지의 누군가가 계속 문자를 주고받고 있었다.


보이스피싱 문자에 대한 뉴스를 볼 때만 해도 나는 절대 속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현실로 닥치니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엄마'라는 호칭에서 나의 패배는 이미 결정돼 있었다. 의심이라는 첫 단추를 끼울 수가 없었다. 당연히 딸이라고 생각했고,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결과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은 '문제가 생겼을 때는 직접 얘기를 주고받는 것이 가장 좋다'는 평소의 지론 덕분이었고, '딸의 언어습관을 기억'한 덕분이었고, '딸의 단짝친구 전화번호를 저장'해둔 덕분이었다. 


업무내용이나 약속은 글로 주고받는 것이 깔끔하지만, 대화는 글로 나누다 보면 종종 오해가 생긴다. 감정이 보이지 않아서 서로 미루어 짐작하기 때문이다. 오해는 서운함을 낳고, 서운함은 거리를 만든다. 그래서 일은 문자로, 대화는 통화로 하려고 한다. 가뜩이나 사는 게 바빠서 자주 만나지도 못하는데, 목소리를 듣는 일까지 줄어드는 것은 좀 슬퍼지니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관심을 갖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속에서 그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가려낼 수 있고, 그 사람의 옷이나 음악, 커피 취향을 알게 되고, 언어습관도 알게 된다. 당연히 친한 친구들도 알게 된다. 자녀의 친구들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간섭이 아니라 관심이고, 전화번호를 저장해 두는 것은 간섭이 아니라 안전망이다. 배우자가 내 친한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면 속상하듯이, 자녀 역시 단짝 친구의 이름을 부모가 기억하지 못하면 속상할 것이다. 그리고 회사에서 비상연락망을 구축하듯이 가정에서도 최소한의 비상연락망은 구축해 놓는 것이 좋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생기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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