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삼보일배
고도 1,224m 설악산 마등령에 위치한 적멸보궁 봉정암. 644년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모셔온 자장율사는 적멸보궁을 지을 곳을 찾아 전국을 순례했는데요. 봉황이 날아와 알려준 천하의 길지에 세운 암자가 바로 ‘봉정암’입니다.
봉정암 법당은 전면이 유리창으로 돼 있는데요.
법당에서 바라보면 창 밖은 온통 ‘설악’입니다.
설악의 풍경 속에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건
커다란 자연석 위에 자리한 ‘탑’인데요.
자장율사가 가져온 부처님의 뇌 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입니다.
조명이 설치돼 있어서 캄캄한 밤에도
사리탑을 바라보며 철야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설악산 백담사에서 영시암을 지나 봉정암까지 약 11km, 4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는데요. 우리는 15시간에 걸쳐 올랐습니다. 걸어서 오른 게 아니라 삼보일배로 올랐기 때문입니다.
시인이자 수행자이며, 독립운동가인 만해스님의 사상이 오롯이 남아 있는 백담사. 거듭되는 화재를 피하기 위해 설악산 대청봉에서 시작되는 물길을 따라 100개의 웅덩이를 지난 자리에 지은 사찰을 짓고, 이름을 ‘백담사’라고 지었다고 하는데요. 11월 17일 오후 12시 30분, 백담사 극락보전 앞에서 삼보일배를 시작했습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걷고, 절하고. 다시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걷고, 절하고...
2박 3일 동안 사용할 물건을 담은 배낭을 메고, 등산화를 신고,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고, 등산로를 따라 걸으며 절을 하는 것은 낯설고도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겨울의 설악은 매서웠습니다. 곳곳에 눈이 쌓여 있고, 얼음이 얼어있고, 때때로 찬바람이 휘몰아쳤습니다. 하지만 수북이 쌓인 낙엽은 무릎과 발을 푹신하게 감싸주고, 몸을 낮췄을 때 코끝으로 느껴지는 낙엽내음은 향긋했습니다. 1시간이 흐르고, 또 1시간이 흐르고... 계속되는 삼보일배에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흘렀고, 다리에서 시작된 통증은 허리로, 어깨로, 온몸으로 퍼져갔습니다. 몸이 힘들어지자 문득문득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왜 이 고생을 사서하고 있을까?”
답은 쉬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 그 생각마저도 끊어지고 오직 삼보일배라는 행위만 남았습니다.
한 걸음 걸으며 "나무"
또 한 걸음 걸으며 "아미"
또 한 걸음 걸으며 "타불"
절하며 "일체중생의 온전한 행복을 위해서 발원합니다"
가다가 바위를 만나면, 바위를 짚고 일어나며 "바위님 감사합니다"
나무를 만나면, 나무를 붙잡고 일어나며 "나무님 감사합니다"
코 앞에 가래침이나 동물의 배설물이 보이면 "있구나" 생각할 뿐 아무 생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후 5시가 가까워지자 주위가 캄캄해졌습니다. 헤드랜턴을 켜고 삼보일배를 이어갔습니다. 고요한 산에서 들려오는 것은 발자국 소리와 숨소리뿐이었습니다. 보이는 것은 발밑뿐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는 행위에 온전히 몰입했습니다. 백담사를 떠난 지 5시간, 마침내 영시암에 도착했습니다.
작은 암자 영시암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머리만 대면 그대로 곯아떨어질 줄 알았는데, 온몸의 근육이 내리지르는 비명 소리와 내일 여정에 대한 걱정으로 쉬이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 보니 어느새 세상이 깨어나기 시작했고, 새벽 찬 공기를 마시며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1시간 삼보일배, 10분 휴식.
어제와 같은 일정을 반복합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걷고 절하기를 쉼 없이 반복합니다. 내리막을 만나면 돌아서서 절을 하고, 바위를 만나면 바위에 기대어 절을 하고, 다리를 만나면 이 높고 험한 산길에 다리를 놓아준 사람에게 감사하며 절을 했습니다. 아프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묵묵히 절하며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쌍룡폭포를 지나고, 그 유명한 해탈고개. 일명 깔딱 고개가 보입니다. 무거운 몸으로는 해탈고개를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마음속 미움 하나, 절하며 내려놓습니다.
마음속 원망 하나, 절하며 내려놓습니다.
내려놓고 또 내려놓으며 해탈고개를 오릅니다.
백담사를 출발한 후 대략 15시간, 마침내 봉정암에 도착했습니다. 몸은 괴로운데, 마음은 하늘을 날 것 같았습니다. 비 오듯 흘린 땀과 함께 몸속의 불순물이 다 빠져나간 것만 같았습니다. 15시간에 걸쳐 대략 만 배의 절을 하며 봉정암까지 올랐는데, 앞으로 뭘 못할까 자신감마저 샘솟았습니다.
삼보일배로 봉정암에 오른다고 하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이렇게 묻습니다. “왜 그 고생을 사서 하는데?” 사실 저도 해보기 전에는 너무 궁금했는데요. 15시간을 올라와 봉정암 사리탑 앞에 섰을 때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세상에는 왜냐고 묻지 말고 그냥 해봐야 하는 일도 있다는 것을요. ‘왜’라는 끝없는 물음이 인류를 발전시켰다면, 묵묵한 ‘행’은 개인을 성장시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일대학교 심리학 교수 ‘폴 블룸’은 말합니다. “인간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고난을 선택한다.”라고. ‘진화의 본질은 고통을 통한 개선’이라는 것인데요. 나를 개선시키고 싶은 욕망,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그 고생을 사서 하게 만들었나 봅니다. 불교에서는 인욕 없이 성장할 수 없고, 인욕 없이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한 알의 대추가 붉어지기 위해서는 태풍을 견디고, 천둥 벼락과 무서리, 땡볕을 견뎌야 하듯이, 사람은 고난의 시간을 견디며 익어가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