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恨에 대하여

한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다

by 아무나



‘한’이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 민족의 공통적인 정서로 한을 꼽는다. 우리는 이 것이 무슨 감정인지 설명할 수 없지만 알고 있다.

외국인에게 그 단어가 주는 느낌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어릴 적 선생님이 설명해 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 그 한이라는 처절하고 비극적인 단어가 ‘우리네 정서’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는 평화의 민족이라면서 침략만 2만 번 넘게 받은 우리네 역사처럼.








그 후로 꽤 오랜 시간이 흘러, 살면서 이런 일 저런 일들을 겪다가 어느 날이었다.


한이라는 것은 마치 핏줄을 타고 흐르는 깊이 심긴 씨앗과 같아서 시간이 흐르고 특정 조건이 만족되면 싹이 터 올랐다. 말할 수 없는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후 나는 노래할 때나 글을 쓸 때, 나는 순간 근원 없이 치미는 슬픔의 감정을 억제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건 나도 모르게 나를 관통한 창 같은 것이었다. 내가 살아있다고 무엇인가 표현하려고 할 때면 항상 심장 어귀를 꿰뚫은 그것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아본 사람들만 아는, 그 마음속 깊숙이 고인 핏덩어리 같은 감정이 내 안에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이따금씩 울음이 터져 나올 때면 두 손으로 그 가슴 언저리를 꽉 잡아 눌렀다. 마치 피가 새어 나오지 못하게 지혈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반대로 슬프다는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면 그 언저리를 두드려보았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나는 다시 할 수 있었다. 그 울음을 울 수 있었다. 나는 머리로만 안다고 생각했던 그것이 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민족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핏덩어리가 똑같이 내 안에 있었다. 그것을 품고 애달파 울었다. 그 치명적이었던 상처가 자식이었는지, 남편인지, 잃어버린 조국이었는지, 수십 번 수백 번 침략당해 잃어버린 고향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익숙해지다 못해 뼛속까지 새겨져 대대로 이어지는 상처가 남아있다.


나는 이 처참한 민족의 후손이다.

나는 이 상처가 싫고 뽑고 싶은데 어느새 나는 이 엉긴 피가 익숙하다.








그 후로 시간이 다시 오래 지난 어느 날, 나는 병에 걸렸다.

상상이나 감정이라고만 생각했던 울혈이 정말 내 몸에 나타났다. 스트레스를 받아 내장 출혈이 생겼다. 얼마 후에는 피부병까지 생겼다. 피부 군데군데 핏덩어리들이 모여 산소를 공급받지 못한 피부가 뒤집어지고 가려웠다. 터져 나온 피부를 짜 보면 붉은 피가 아니라 덩어리 진 검정 피가 나왔다.


나는 한동안 그 핏덩어리들과 씨름했다.

내가 내뱉지 않고 안에 쌓아두고 감춰두었던 울음이 결국 정말 핏덩어리가 되어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몇 년을 앓으면서 나는 이 한을 풀지 않으면 오래 살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이 맺힌 것들을 풀어내기를 원했다.


나는 여태껏 나에게 잘못한 그들이 내게 와서 용서를 빌어야 이것들이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움켜쥐고 있었던 안 좋은 기억들이 덩어리 져 내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이 한의 덩어리들을 원하지 않았다.


이것을 치우는 것은 내 힘으로 되는 일도 아니었고 단숨에 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매일매일 조금씩 빛 가운데로 나아가는 일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킬 때, 밥 먹기 전에 감사 기도할 때,

저녁에 시간을 정해서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옛날의 기억을 하나씩 꺼내 그분 손에 넘겨드렸다.

나는 더 이상 이것을 어떻게 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해결해달라고 애처럼 생떼 부리듯이.

그것은 대청소에 가까운 작업이었다.


그 일이 다시 몇 개월이나 계속된 후, 어느 날 나는 나를 괴롭혀 왔던 그 한 맺힌 기억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보려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일들이 기억나지 않았다. 애써 기억하려고 해도 정말 하나님께서 가져가셨는지 어렴풋이 아른 거릴뿐 더 이상 내 삶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 한들이 다 떠나간 것이다.


남은 텅 빈 마음에 그저 하나님의 고요와 은은한 빛이 머물러 있었다.

더듬어 봐도 그 응어리들은 더 이상 내게 없었다.

그렇게 자유는 고요히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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