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마음도 아니고 머리도 아니다.

십 대와의 동거

by 영웅

마흔에 돌아간 초등학교 5학년이 아닌

진짜 나의 초등학교 5학년 시절 2학기 학급반장 선거 날이었다.

어찌나 양심적인지 당시에는 종이 투표보다 눈감고 손들기를 하여 반장과 부반장 각종부장을 뽑았다.


반장에서 떨어지면 부반장이 되었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나도 후보에 올랐다.

눈을 감고 내 이름을 호명하자 손을 번쩍 들었다.

뽑혀라 뽑혀라. 한참을 숫자를 세는지 손을 내리라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양심적인 손들기 투표가 끝나고 호명되는 반장이름은 다른 친구 이름이었다.

그렇구나 싶은 찰나 부반장에 내 이름이 크게 들려왔다.

아직도 그때의 눈감고 손들던 내 모습이 눈을 감고 있었는데도 보인다.


집에 가자마자 책가방을 내던지고 엄마에게 부반장이 됐다고 알렸다.

동네에서 행사만 하면 무대에 나가 온갖 상품을 타오던 엄마는 당연히 신이 나 나를 부둥켜 안아 줄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의 반응은 "엄마 학교 못 가는데! 엄마 돈도 없고 그런 걸 왜 한다고 했어? 당장 안 한다고 해! 선생님 전화번호 머고?"였다.

당시만 해도 지금과 다른 학교생활은 반장 부반장은 부모의 치맛바람이 대단히 자리 잡은 아이들만 나가는 것이었다. 치맛바람은커녕 치마휘파람도 없던 우리 집에서 부반장이 나리라 상상도 못 했던 엄마는 돈이 없다며 극구 못한다고 하라고 수차례 말했다.

그러고선 곳곳의 지인들에게 집유선 전화기를 들어 전화를 돌리며 큰일 났다며 어떻게 해야 되냐며 의견을 물었다.


나는 다음 날 선생님께 가서 엄마가 이야기한 그대로 돈이 없어서 부반장을 할 수 없다며 전달했고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두 번 더 묻지도 않고 그 이유를 납득하며 다른 친구에게 부반장 자리를 넘겼다.

당시 돈이 없는 것은 그렇게 부반장을 내려올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나는 그때의 엄마를 지금까지 계속 이해한다.

당시만 해도 아이가 학급반장이면 엄마도 학급반장이던 때니까 더더우기 이해한다. 빠듯한 생계에 나의 부반장 명찰 하나 달자고 생활비를 줄여가며 여러 모임에 나가 회비를 걷고 촌지를 하러 시간 내 따로 찾아가는 건 지금 생각해도 수지타산 맞지 않는 일이다.


가끔 상상은 한다. 내가 그때 그냥 부반장을 해버렸다면 없는 살림에 어떻게든 그냥 몇 푼 마련해서 학급에 좀 쥐어주고 울며 겨자 먹기로 엄마도 학부모 모임에 참여하게 하고 막무가내로 나아갔다면 지금 내 인생은 조금 더 당차 졌을까?라는 상상.

하지만 그러기엔 나는 충분히 당차다. 그때도 당차게 내려오지 않았나!? 미련 없이 내려놓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 그렇게 믿자.




점심시간이 끝나고 한창 나른하게 일하는 시간 딸의 전화가 울린다.

"응 서안아"

"엄마! 엄마! 나 전교회장선거 나가도 돼?"

"응! 서안이가 원하면"

"알았어!"


여전히 퇴근하고 저녁을 차리는 중에 아이들이 온다.

"왔어~~~~ 회장선출 나갔어?"

끄덕인다.

"엄마 나 기호 몇 번 됐게?"

나는 항상 이런 질문에 질문한 아이의 기대치의 기준을 알지 못해

제일 좋은 것에서 중간쯤 되는 것으로 늘 불렀다.

하지만 오늘은 에라 모르겠다 싶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1번?" 하고 물었다.

"어!!! 나 기호 1번이야!"

"우와~ 1번!? 기호 1번! 김서안!"

아이가 뿌듯해한다.


뿌듯해하는 아이의 얼굴 그 한 칸 뒤로 아이에게 어떻게 이런 용기가 났나 기특하고

또 그 얼굴 한 칸 앞으로 떨어졌을 때의 실망감이 걱정된다.

아이는 그 또한 스스로 이겨낼 수 있을까.

아이의 이마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닦아 주고 싶다. 싶었다.


만들어 낸 음식을 밥상 위에 올리면서

앞에서 우물우물 음식을 먹는 아이를 보면서

생각할수록 더 신통방통하다.

"너 어떻게 전교 회장선거에 나갈 생각을 했어?"

"뭐, 그냥 한번 나가 보려고"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친구들 20명 추천서 있어야 된다던데 그건 어떻게 했어?"

"내가 친구들 이름이랑 사인 다 받아서 냈어!"

"그렇구나 정말 대단하다, 뭐 포스터 같은 거나 공약 같은 거 해야 되지 않아?"

"아 엄마, 좀 그만 물어봐"

"아니 그냥 궁금.."

"그만 좀 물어보라고!!!"

"아니 엄마가 좀 도아줄 게 없나 해서 궁금해서"

"도아줄 거 없어! 내가 알아서 할 거야 그만 좀 물어봐!"

"엄마 고작 두어 개 물어봤어, 그 정도도 엄마가 못 물어봐?"

"그냥 말하기 싫어! 대답하기 싫어! 그만 좀 물어봐"

어이가 없어서 남편과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곤 조용히 밥을 먹으며 또 생각했다.

'아니, 뭐 대단한 질문이라고 그거 하나 물어봤다고 감히 엄마한테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엄마한테

이렇게까지 소리 지르면서 그만 물어보라고 할 일이냐'

기분이 상해 견딜 수가 없었다.


이게 버릇이 없는 건지 예의가 없는 건지 공경심이 없는 건지 뭐가 없는 모습인 건데

불과 30여분 전쯤 기호 몇 번 일 거 같냐며 애교스럽게 묻는 딸과

질문하지 마라며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잔뜩 내는 딸

그 두 개의 같지만 다른 얼굴만큼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서안아, 네가 전교회장선거 나간다니까 신기하고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그걸로 그렇게 화를 내면 어떻게?" 남편이 말했다.

"아, 밥 먹고 있는데 자꾸 왜 물어!"

"저녁 먹으니까, 이럴 때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먹는 거지"

"아 싫어! 나는 싫어!"

마음의 장작에 자꾸만 불이 붙는다.


"알았으니까. 그만 묻자 우리. 너도 앞으로 엄마아빠한테 질문하지 마"

"알았어~"

나의 장작에 불이 잔뜩 붙어 화염이 되어 입 밖으로 나왔다.

"뭐 도움이 될까 싶고 궁금할 수도 있고 그런 게 가족이고 부모지! 너는 뭐 대단한 대답해 주는 것처럼! 너도 다시는 엄마한테 말 걸지 마!"

나는 아이에게 절교하자 말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다.


한번 불붙은 장작은 계속해서 타들어 갔고 화염은 한없이 입 밖으로 나왔다.

어디선가 그만하라고 자꾸 외치는데

또 어디선가 화염이 계속 그치지 않고 나온다.


그곳은 마음도 아니고 머리도 아니다.


마음까지 닦아 주고 싶다고 해놓고서는

내 화염에 뜨거워질 마음은 또 잊었다.


나는 그렇게 여전히 읽어내고 또 잊고 읽어내고 또 잊는다.

언제쯤 아이 앞에 온전한 어른으로 서 있을 수 있을까.


다음날 아침 아이가 와서 말한다.

"엄마, 어제는 내가 너무 피곤해서 대답하기 귀찮아서 그랬어 미안해"

웬일로 아이가 나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나는 고민할세 없이 다시 절교를 푼다.


나는 또 여전히 다짐하고 또 잊고 다짐하고 또 잊는다.

언젠가 아이 앞에 온전한 어른으로 서 있을 수 있을까.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