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을 살아온 나도 아직 맹탕이면서.

십 대와의 동거

by 영웅

한 아이 한 아이 차례로 발표를 한다.

세 번째 아이는 마이크를 찾아들고 한다.

첫 번째 두 번째 아이는 긴장했는지 마이크를 깜빡했나 보다.

그 아이부터 마이크를 들고 하기 시작한다.


다섯 번째 아이는 발표하기 전 자기소개를 먼저 한다.

이름을 소개하고 발표를 시작한다.

그 아이가 이름을 소개했다고 그다음 아이도 이름을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그다음 아이는 또 발표부터 이어간다.

또 다른 아이는 자기소개를 말할 때 학반 번호까지 거창하게 설명한다.


또 어떤 아이는 자기소개뿐만 아니라 이 발표를 왜 하게 되었는지 까지 붙여 말한다.


앞서 아이들이 발표 앞에 많은 후렴을 붙였다고 그다음 아이가 그것을 같이 하진 않는다.


모두 각자만의 목소리, 속도, 눈빛을 두는 곳까지 모두 제각각 발표를 해나간다.

어떤 아이는 앞서 아이가 마이크를 들고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마이크를 들고 하지 않겠다고 한다.


부모들은 숨죽여 모든 발표를 지켜본다.


내 아이는 마이크를 쥔 채 아니 마이크를 쥐지 않더라도 또박또박 너무 빠르게도 너무 느리게도 말하지 않기를 앞서 이름을 소개하고 거창한 후렴까지 넣을 줄 아는 아이가 우리 아이이기를 같은 마음으로 숨죽여 바라보리라.


어쩌면 내가 어릴 적 꿈꾸던 나의 모습.

부끄러워 나서지 못했지만 나서고 싶었던 나의 모습.

건너 건너 짝지의 멋지던 모습.

그런 내가 갖지 못한 모습들이 내 자식이 해냈으면 하는 욕심에 더욱 숨죽이게 되는 것 같다.


죽인 숨이 무색하게도 현실 속 내 아이는 집에서는 그렇게도 또렷또렷 내 말에 변호사처럼 잘도 반박하더니 발표할 때는 조용조용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심지어 조별 발표에서 목차만 발표하고 나머지 알짜배기 내용은 친구들이 도맡았다.

그래도 제법 발표 자료를 초등학교 5학년이 팀별로 만든 것 같은데 기특하기도 하다.

주제는 왕건이었다. 아무래도 왕건의 왕관위로 리본을 그림을 크게 넣은 것은 내 딸이 한 행동일 듯한 생각이 든다.


제법 깊은 역사를 아이들이 배우고 있구나 싶었다.

집에 돌아와 아이에게 물었다.

'왕건은 어느 나라 사람이야?'

'왕건? 왕건이 누구야?'

'오늘 네가 발표한 사람'

'아~~~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모르는데?'

'네가 오늘 발표했잖아?'

'모를 수도 있지'

'아니 오늘 발표하고 발표자료도 같이 만든 거 아니야?'

'만들었지~'

'왕건은 고려를 세운 분이잖아'

'아~~ 고려, 깜빡했어'


숨죽여 바라본 발표는 모두 허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내가 숨죽여 아이의 발표를 바라본 그 순간

아이는 자신만의 인생 안에서 나름의 긴장을 하고 발표를 이어나갔으리라.

왕건을 발표했지만 왕건이 고려를 세운 것은 까먹은 것

그것 또한 그 아이의 인생이고 그 아이의 돌다리일 것이다.


'그때는 까먹었으니 다음엔 안 까먹도록 노력해야지.' 이렇게 생각하겠지.

이런 생각까지 바라며 상상하는 나 또한

내가 모든 것이 완벽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아이는 이만큼은 완벽하기를 바라는 나의 모순일 것이다.

40여 년을 살아온 나도 아직 맹탕 이면서


그저 나보다는 멋지기를

내가 느꼈던 어느 감정들 안에서 약간의 불편했던 감정마저

아이가 느끼지 않기를 바라보는 나의 모순

그러려면 아이가 완벽하길 바라는 나의 모순




그래도

오늘 발표한 왕건을 까먹는 건 너무 하지 않냐?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