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회고] ~6/3
크고 많은 일들이 말 그대로 '후다닥' 지나가버린 듯한 한 주다. 지난주와 오늘, 나는 갑자기 너무 다른 삶을 살게 됐다. 금요일에 드디어 사무실에서 내 모든 짐을 뺐다.
당일까지도 꽤나 정신없는 시간들을 보냈다. 나름 준비할 시간이 충분했던 것 같은데, 막상 코 앞으로 다가오니 이제야 보이는 일들이 있다. 이것도 알려주고 싶고 저것도 알려주고 싶어서 계속 사람들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와중에 마무리 짓지 못해 마음에 걸리던 일이 있었는데, 잘된 건지 어떤 건지 내가 가지고 나와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그 과정에서 많이 아쉬운 것도, 불편한 것도 있었는데, 벌써 아무 생각이 안 난다. 역시, 퇴사가 만병통치약인가 ㅎㅎ
토요일에는 사놓고 한 번도 입지 않았던 새 옷을 꺼내 입고 나와서 미용실에 다녀왔다. 6월부터 시작할 수영도 등록했다. 뭔가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다. 그리고 늘어지고 싶지 않았다. 늘어지기 시작하면 한없이 늘어지는 나를 알기에, 작은 장치가 필요했달까. 지금 올라오고 있는 이 텐션을 유지하고 싶기도 했고.
오후엔 커뮤니티 모임에 다녀왔다. 사실 여기는 작년에 팀장직에 대한 고민이 커지면서 시작한, 직장인 성장을 위한 커뮤니티다. 내가 회사에서 겪는 갈등이 처음 경험하는 역할에서 오는 것이 아닌, 가치관이나 철학에서 오는 것임을 깨달은 뒤론 내 커리어 전환을 탐색하는 곳이 되어버렸지만. 아무튼 의도치 않게 올해 초부터 이곳에서 다양한 도전을 시도해 보게 되었고 (이렇게 회고를 시작한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이날도 "(이직처를 정해놓지 않고 퇴사한 사람 중에) 생각보다 빠르게 재취업하는 사람 없더라. 조금 더 시간을 길게 가지더라도 방향을 명확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하루빨리 나도 뭔가 나를 위한 공부라던가, 계획을 세워야 할 텐데, 그래도 조금은 늘어져도 되겠지. 여유가 생기니 또 하고 싶은 것은 게임이다. 참새가 방앗간 그냥 못 지나친다고, 일요일엔 정말 오랜만에 오픈 시간부터 가게를 찾아가서 문 닫을 때까지 놀다 나왔다.
주말까지는 그래도 실감이 덜했는데, 오늘은 달랐다. 평소보다 느긋하게 일어나서 출근 대신 수영장에 가는 셔틀버스를 탔다. 수영은 어려서부터 성인이 되어서 까지도 2-3번 정도 강습을 들은 적 있는데 난 아직도 수영을 못한다. 몸이 물에 뜨는 것도 어렵고, 물속에서 움직이는 건 더 어렵다. 아마 물을 먹는 게 두려워서 숨을 꼭 참고 버티다 보니 온몸에 힘이 들어가서 뜨지도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같은데, 이 모든 걸 알면서도 절대 고쳐지지 않는다.
다만, 무섭고 두려운 것과는 별개로 이상한 오기가 있어서 어딜 놀러 가도 계속 물에 들어가곤 했다. 그렇게 바짝 얼어서 대체 물에는 왜 자꾸 들어가는 거야?라는 질문도 많이 들어봤는데, 모르겠다. 들어가고 싶다. 무섭고 두려운 거랑, 하고 싶다는 마음은 별개의 감정이라면 답변이 될까.
아무튼 기회가 왔을 때 또 한 번 도전해 보련다. 회사에서 제공해 준, 채 다 사용하지 못한 복지 포인트로 수영복과 수경, 수모도 새로 다 샀다. 첫 날인 오늘, 생초보반인 나는 수심 90cm짜리 유아풀에서 50분 동안 물장구를 치고 걷기를 반복했다. 나처럼 생초보로 온 사람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중에 한 아주머니는 무려 우리 아빠와 동년배셨다. (남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라 할지 몰라도 절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우리 아빠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ㅎㅎ) 늘 수영장 있는 곳에 가면 자기 혼자서만 물 밖에서 구경하는 것이 싫어 지금에라도 도전하셨다는데 어찌나 멋져 보이던지. 마침 사는 동네도 비슷하시다니, 함께 잘 다니며 이번엔 꼭 수영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은 좀 많이 두려웠다. 5년, 거의 6년 만에 처음으로 소속 없이 그냥 내동댕이쳐지는 기분. 다시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어떡하지, 낙오되면 어떡하지, 무섭고 두려웠는데. 역시 무섭고 두려운 것과 하고 싶은 마음은 별개다. 하다 보면 또 어떻게든 되겠지. 안 되면 또 될 때까지 해보면 되겠지. 칠순의 나이에도 수영을 배우고 싶은 용기와 도전 정신이 우리에게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