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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Jun 22. 2018

12. 다시 올까? 내 인생 '다시'라는 순간

2017.4.14. 코파카바나, 볼리비아(D +67)

쿠스코를 떠날 때쯤부터 남미의 대 이동(!?)이 시작될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날짜는 바야흐로 4월 중순, 가톨릭교의 가장 큰 축제 중 하나인 부활절을 향해가는 시기였다. 인구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인 남미에서 부활절은 가장 큰 종교적 행사 중 하나로, 신자들은 이날에 맞추어 이곳저곳의 순례지를 향한다. 그리고 볼리비아의 코파카바나도 바로 그중 하나였다.




쿠스코를 떠나온 뒤로 P와 나는 줄곧 세마나 산타(semana santa, 부활절)를 어디에서 보낼 것인가를 놓고 고민이었다. 이미 숙소도 확보되어 있겠다, 적당히 적응을 마친 푸노에서 부활절인 16일까지 보내고 가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사실 더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은 코파카바나의 티티카카. 게다가 달이 없는 그믐쯤에 맞추어 우유니 소금사막에 도착하려면 더 이상 지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일단 코파카바나로 가자."

"벌써 코파카바나는 숙소가 꽉 찼대. 숙소를 못 구하거나 너무 비싸게 부르면 어쩌지?"

"그럼... 그때는 코파카바나를 건너뛰고 라파즈로 가는 거야. 어때?"

그때만 해도 푸노에서 만난 티티카카 호수면 충분할 줄 알았다. 아무리 더 아름답다 한 들, 결국엔 똑같은 호수니까, 혹시나 볼리비아의 티티카카 호수를 보지 못하더라도 괜찮을 줄 알았다.  


부활절을 앞둔 코파카바나의 풍경


잉카 제국의 시절부터 수 세기 동안 종교적인 순례지였던 코파카바나는 가톨릭 순례자들에게도 같은 기능을 하고 있었다. 시가지 옆 칼바리오 언덕 꼭대기에는 예수상과 십자가가 연달아 늘어서 있고, 이곳 대성당의 성모상은 볼리비아의 수호성인으로 기적을 행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부활절 기간엔 158km나 떨어진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에서부터 걸어오는 순례객들도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완연한 축제 분위기로 시끌벅적한 거리. 어디 바닷가 휴양지라도 온 듯 예쁜 옷, 신나는 표정으로 들떠 있는 사람들. 적당히 저렴하면서도 깔끔하다고 하여 원래 가려고 알아봤던 콜로니알 호스텔은 1인당 100볼을 불렀다. 페루 솔과 볼리비아의 볼은 대략 2:1 정도로 계산하니 페루 솔로 따지자면 50솔, 우리 돈으로 차지면 이만 원이 조금 안 되는 금액.

지금 생각해보면 생애 다시없을 순간을 위한 지출이라 치고 그리 비싼 금액이 아니었겠지만, 당시에 그건 페루에서조차 한 번도 지불해본 적 없는 높은 금액의 숙박비였다. 눈앞에 보이는 호스텔을 몇 군데 더 둘러보았으나 사정은 비슷. 그나마 가장 싸게 부른 곳은 더블룸에 1인 80볼씩이었다.   

한편에선 지금 서두르면 라파즈로 향하는 2시 버스를 탈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예약을 한다면 25볼로 할인을 해준다고 말이다. (나중에 알 보고니 이 금액도 딱히 할인된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축제를 즐기기에 사전 정보가 너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순간엔 그냥 이 정신없고 비싸고 북적이는 곳을 빨리 지나가고 싶었다. 그냥 복잡한 상황을 피하고 싶던 걸인지도 모른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코파카바나에 머물기를 포기하고 우리는 라파즈 행 버스에 다시 몸을 실었다.  



국경을 넘은 뒤에도 버스는 한참 동안 티티카카 호수 언저리를 따라 돌았다.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햇빛이 부서지는 파란 물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푸노의 티티카카 호수와 코파카바나의 티티카카 호수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말로는 쉽게, 다음에 다시 오면 되지 뭐,라고 했지만 사실은 아마 평생 다시는 오지 못할 곳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장소도, 사람도 늘 그렇지 않나.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다시 오지 않을 것들. 어떤 여행에서도, 어떤 삶에서도 다음이란 없다. 지금 내가 있는 곳, 지금 너를 만난 이 순간, 지금 내게 닥친 상황. 모든지 다 그때뿐이다.  

사실은 머물 수도 있었을 텐데. 회피였는지도 모른다. 또 이렇게 서툴고 근시안적인 선택의 연속을 뒤로하고 이미 버스는 출발했다. 괜스레 눈물이 났다. 아마도 우리 다시는 못 만나겠지. 안녕, 잘 있어.



국경을 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갑자기 항구에 섰다. 아직 다리가 세워지지 않은 수협을 배로 건너기 위해서다. 배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구불구불 몇 시간을 더 돌아가야 한다고, 승객은 물론 버스도 바지선에 실어 건너야 했다.

덕분에 잠시라도 코파카바나의 티티카카를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잠깐의 만남은 아쉬움을 더 크게 만들었다. 이 아름다운 바다를, 내 발로 놓쳐 버렸구나. 과연 다시 올까? 내 인생 다시 너를 만나는 순간이?


*코파카바나(Copacabana)
남미에는 두 군데의 코파카바나가 있다. 하나는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브라질의 코파카바나, 또 하나는 이날 내가 스쳐간 볼리비아의 작은 해안 도시 코파카바나. 해안이라기엔 호수변이겠지만.
앞서 티티카카 서쪽의 푸노를 페루의 큰 도시라 소개했는데, 동쪽에 자리 잡은 볼리비아의 코파카바나는 그에 비하면 아주 작은 어촌 도시의 느낌이다. 푸노에서는 배를 타거나 전망대에 올라가야만 겨우 저 멀리 호수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면, 코파카바나에서는 어디서 무얼 하든 가까이에 호수를 느낄 수 있다. 오히려 작은 도시가 주는 매력이랄까. 게다가 훨씬 바다 같은 느낌의 만, 그 위를 정신없이 오가는 작은 배 등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코파카바나를 더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만들곤 한다.
그렇게 잠깐 있었다 놓고 이렇게 길게 설명할 수 있는 이유? 스포일러이지만, 그래서 결국 난 돌고 돌아서 이곳을 다시 찾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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